▲ 베이촨현 몐양시 구호물품 창고에서 물품을 내려 놓고 베이촨 물품담당자인 이부영씨와 함께.
▲ 홍십자 회장인 모홍빈 담당자에게 안전가옥비로 6만위안의 성금을 기탁했다.
중앙봉공회와 은혜심기운동본부가 4~8일까지 4박5일간의 일정으로 중국 쓰촨(四川)성을 강타한 대지진의 진앙지인 원촨(汶川)현 영수(映秀)진과 베이촨(北川)현 몐양을 방문했다. 전국봉공회원을 대표해 김미진 중앙봉공회장과 강명권 원봉공회 사무국장을 비롯한 유덕정 광주전남교구봉공회장, 류숙정 대전충남교구봉공회장, 김명지 전북교구봉공회장 등 5명이 구호물품과 성금을 전달했다.

청도공항과 교당에서
봉공회장 일행은 인천공항에서 쓰촨성으로 가는 성도행 직항로도 있었지만, 청도를 경유해서 성도로 가기로 했다. 청도교당에 물품을 전달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행은 4일 8시45분 비행기에 올랐다. 1시간 10여분쯤 청도 공항에 도착했다. 밖에서는 청도교당 박현진 교무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일행이 검색대를 지나자 보안검색대 직원이 우리일행을 한쪽으로 불러들였다. 가방과 박스에 든 물건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쓰촨성에 구호물품과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 간다고 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1시간이 넘게 조사를 마치고 환승시간이 다 되어서야 나와 결국 회장단들과 따로 성도를 가는 일이 벌어졌다. 청도는 이번 8월 베이징올림픽 때 요트경기를 하게 되는 곳이고, 지난달 말 쓰촨성에서 가까운 중국 남부 구이저우(貴州)성에서 대규모 소요 사태가 발생해 보안검열이 강화되었다고 해 이해를 했다.
4시 50분발 다음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한가한 마음으로 박 교무와 청도교당에서 기다렸다 가기로 했다. 마침 봉근주 교도가 마중을 나와 도움을 받게 되었다.
승용차로 1시간쯤 되는 거리인 청도교당으로 향했다. 교당은 단독 주택으로 생활하기에는 불편이 없어 보였으나 현지인들의 끊임없는 감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교당에는 서혜진 부교무와 휴무중인 동현인 교무가 함께 있었다. 동 교무는 차(茶)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휴무하면서 공부 중이고, 유학생(권화정 교무조카)과, 3층에는 고향이 부산인 노부부(김항선 교무 친구)가 살고 있었다. 청도교당은 30여명의 교도들로 단별 활동 등으로 끈끈한 법동지의관계를 맺으며 가족처럼 지내고, 공부심을 진작시키는 마음공부를 비롯한 교전읽기, 교전쓰기 등으로 교화하고 있었다.

성도에서 구호활동을 펼치다
봉 교도의 도움으로 청도에서 4시50분발 비행기에 올랐다. 비로 인해 2시간이 지나서야 출발했다. 성도에서는 중국교구에서 김영덕 교무가 지원 나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0시가 돼서야 성도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너무도 긴 하루였다. 현지 사정도 잘 모르고 간 큰 실수로 인한 오늘의 수업료는 값졌다.
5일 아침. 현지 사정으로 인해 일정이 변경되어 첫날은 성도에서 가까운 사찰인 낙산대불과 동방대불을 찾아 안전하고 의미 있게 위령재를 지내는 것으로 했다. 낙산대불은 부처님의 공덕으로 낙산시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위해 자연석을 깎아 조성한 71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과 산 전체가 사원으로 이뤄진 곳이다. 낙산대불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관광을 온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지진의 공포에서 벗어난 듯 겉보기에는 평온한 표정들이었다. 사찰 안 법당에서 스님들은 경전을 읽고 있고, 불공을 드리러 온 많은 사람들은 향을 사르며 기원을 올리고 있었다. 우리일행은 스님에게 따로 허락을 받고 법당에서 우리 의식대로 위령재를 올렸다.

▲ 베이촨현을 가다 고속도로에서 봉고차량이 고장이나 휴게소에서 타우너 차량을 구해 타고 있다.

원촨현 현장을 찾아
6일, 지진현장으로 가는 날. 아침부터 우리일행은 바쁘게 움직였다. 김 교무와 나는 까르프에서 구호물품을 실을 차량을 점검하고 촬영하기 위해 먼저 까르프로 갔다. 8시30분에 까르프에서 쌀5키로 그램짜리 600포와 식용류 5리터 100박스를 싣고 9시 아침 출근시간에는 트럭이 시내에 들어갈 수 없어 기다리다 갔다. 오늘 통역과 모든 안내는 위조관(魏租寬) 교수(성도전자과기대학)가 도움을 주기로 했다. 위 교수는 성도교당을 희사하신 만타원 김명환(종로교당)교도의 막내아들 이태석 교도와 절친한 관계로 성도교당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분이다. 9명의 일행은 트럭 앞에 플래카드를 달고 봉고차량 1대와 1톤 트럭 1대에 구호물품을 싣고 출발했다. 성도에서 원촨현까지는 90여 키로미터.

진앙지로 가는 왕복 1차선 도로는 일반차량에 방해 받지 않고 현장으로 빨리 갈 수 있도록 고속도로 길목까지 구분이 되어 있었고, 고속도로에서는 통행료를 받지 않았다. 원촨으로 가는 고속도로 길가의 집들은 아직도 흉한 모습들이 그대로이고, 멀리보이는 산들은 군데군데가 산사태 흔적들로 당시의 상흔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원촨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원촨은 청두에서 구채구(九寨溝)로 가는 서쪽 길목인데 다리가 끊어졌을 뿐 아니라, 산사태로 인해 길이 없어져 버렸다.

특히 구채구는 중국 쓰촨성 북부의 나와 티베트 장족 자치주에 있는 자연보호 구역으로 1992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아름다운 협곡이 있는 관광명소이다. 가는 도중에 검문소가 있어 관광차량이나 일반차량은 통제하고 있었다. 도로 멀리서 보는 문천은 시가지가 파란색의 텐트로 뒤덮여 있었다. 아스팔트길은 동강나 뒤짚여 있고, 산에서 굴러 내려온 커다란 바위며 장마 때처럼 흘러내린 강물 옆으로 위험천만하게 만들어 놓은 임시 개통된 길, 양쪽 옆에서는 중국 정부에서 나온 공무원과 군인들이 땀을 흘리며 활발한 재해복구 작업을 펼치며 지나가는 차량마다 방역을 하고 있었다. 3시간이 넘게 달려 대지진 진앙지인 원촨현 영수진(映秀鎭)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을 담당하고 있는 악건문 원촨현 임업국책임자가 반가이 맞이했다. 김미진 중앙봉공회장을 비롯한 우리일행은 은혜의 구호물품을 전달하며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그는 "멀리 한국에서 중국에까지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펼쳐주셔서 주민들을 대신해 감사하다"며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왕석강 원촨현 문화체육국 담당자의 안내로 7,000여명이 함께 안장된 언덕 위의 공동묘지인 합동 분양소에서 강명권 원봉공회 사무국장과 장의신 성도교당 교무의 주례로 위령재를 거행했다. 그는 우리 옆에 천진난만한 초등학교 2학년쯤 되는 2명의 아이를 가리키며 무너진 학교건물에서 빠져나온 아이라고 했다. 그 아이들은 카메라를 든 나를 보고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래도 밝아 보이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희망찬 중국의 내일을 느낄 수가 있었다.

왕 씨는 "현장에서 나오는 귀중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에서는 이곳을 앞으로 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이어서 위령재 때 쓰였던 모든 의식물을 기념하고자 한다"고 말해 봉공회 조끼와 기원문, 염주 등을 기증하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두장옌시에 들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두장옌 수리시설은 22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진 곳. 두장옌시에서는 국내외에서 지진 지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지난 6월14일부터 입장료 90위안(1만3500원)을 받지 않고 무료입장을 허용하고 있었으나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두장옌을 나와 시내를 벗어나는 길옆에는 이재민들을 위한 안전가옥(조립식 판넬)의 건물과 텐트촌이 있어 둘러보았다. 서너 명이 살고 있는 텐트는 20평방미터 넓이의 조그만 공간, 활짝 열어 젖힌 텐트 속에서는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립식으로 지은 안전가옥은 공동으로 식사를 하는 곳이 따로 있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간단한 침구류 정도가 있을 뿐, 식사는 공동 배식으로 해결하고 있는 등 시민들의 불편은 여전했다. 그런 두장옌 시는 시민 1만명씩 임시로 묵을 수 있는 가건물을 7군데나 세웠다고 한다.

▲ 낙산대불 법당에 지진희생영가를 위한 위령재를 지내고 있다.
베이촨현 몐양을 찾아
7일, 진앙지인 베이촨(北川)현을 가는 날. 베이촨현은 원촨보다 피해가 더 큰 지역으로 건물의 80%가 무너졌고, 3천~5천명이 사망했을 뿐 아니라 1만 여명이 다쳤다고 했다. 중국 관계자에 따르면, 베이촨현은 지진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후세까지 길이 역사의 교훈장으로 남겨질 예정이다. 오늘은 김영덕 중국교구사무국 교무가 통역을 했다. 8시30분에 출발했다. 1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리자 봉고차량에 이상이 생겨 휴게소에서 차량을 수소문 해 7인승 다마스차량으로 에어콘도 안된 차량에 2시간 가량을 비좁게 않아 몐양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구호물품 차량과 만났다. 몐양시내로 들어와 김영덕 교무가 홍십자에 연락을 했으나 베이촨현에는 피해가 심해 복구가 늦어 일반 구호차량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구호물품은 몐양시 민정국 당옥생 씨와 베이촨현 물품 담당자인 이영부 씨에게 어제와 같은 량으로 전달했다. 창고 주위와 안에는 현지로 갈 텐트며 각종 구호물품들이 쌓여 있었다.

회장단들은 "현장에 찾아왔지만 구호활동을 못해 허전하다"며 차량에 실려있는 어제와 같은 양의 쌀과 식용류 등 구호물품들을 내려놓는 일을 함께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성금은 홍십자 회장인 모홍빈 담당자에게 안전가옥비로 6만위안의 성금을 기탁했다.
이렇게 현장을 찾아 구호물품과 성금전달을 원만히 마치고 성도로 돌아왔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은혜심기운동본부와 7명의 소중한 인연들인 믿음직한 봉공회 총책임자인 김미진 중앙봉공회장, 날마다 활기를 준 김명지 전북봉공회장, 건강을 잘 챙겼던 유덕정 광주전남봉공회장, 가는 곳 마다 사진기록을 담은 류숙정 대전충남봉공회장, 통역을 한 위조관 교수, 베이징에서 파견 나온 김영덕 교무, 행사를 주관한 장의신 교무, 모든 일을 진두지휘한 강명권 원봉공회 사무국장 등이 뿌린 씨앗은 중국의 종교 벽이 열린 날 교화에 희망의 열매로 다가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재로 불러들인 대지진의 재앙은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비로소 느끼는 짧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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