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화 키운 최초의 여성 수위단원들과 만남
가장 많은 설법 기록된 '계동연구회' 사랑채

▲ 계동길의 이공주 선진 집은 대종사가 많은 법을 설해 소중한 법문으로 남아있는 성적지다.
원기101년 봄, 세계의 눈이 서울로 모이고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이자, 교단에서도 많은 유적과 기록이 남아있는 서울에서의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 개최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기념대회의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도 교단 초기 경성교화의 흔적과 서울의 문화유산을 함께 걷는 7일간의 개벽순례는 서울을 찾는 국내외 손님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서문성 교무와 '서울원문화해설단' 교도들과 함께 소태산 대종사의 경성교화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 개벽순례 북촌길 코스.
창덕궁 입구를 시작으로 은덕문화원·계동·시민선방을 잇는 북촌길 코스는 소태산 대종사의 첫 상경과 최초의 여성수위단원들과의 만남 등 원불교 경성교화의 태동이 담긴 자취다. 대종사가 탄생한 영산성지와 종교로서의 기틀을 잡은 익산을 넘어, 교화의 큰 걸음을 뗀 시작점이 바로 종로구 계동이요, 훗날 경성지부의 유공인이자 대중교화자로 맹위를 떨친 여성선진들이 소태산 대종사에게 가르침을 청했던 것이 계동이다.

또한 북촌길 코스는 소태산 대종사가 각종 종교서적을 탐독하며 유불선 통합의 결실을 맺는 데 있어 역할했던 천도교와 불교의 유적을 잇는 의의도 크다. 천도교대교당 수운회관과 조계사,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인사동 문화거리를 걸으며, 소태산 대종사가 진리에 대한 탐구와 목마름으로 서적들을 찾아다녔을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천도교와 불교 유적 있는 북촌길 코스

소태산 대종사의 첫 상경은 원기9년 3월30일, 최도화의 안내로 송규, 서중안, 전음광을 대동한 채였다. 경성역 근처에서 하루를 묵은 대종사 일행에게 다음날 58세의 박사시화가 인사를 올리고 조카딸의 집으로 모시니, 그 장소가 바로 창덕궁 옆 계동 성성원의 집이다.

90여 년이 흐른 현재 계동길은 오래된 정취의 방앗간, 목욕탕에 최근 생긴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이 오밀조밀 섞여있어 '수십년을 오가는 시간여행지'로 불린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와 이어지는 계동길은 총부 외에 소태산 대종사가 가장 많이 걸어다녔던 길이며, 경성교화에 큰 힘이 된 대중교화 인연들이 스승을 따라 수없이 오간 곳으로 추정된다. 이 계동길 가운데 골목 안쪽에 위치한 성성원의 집 현재 주소는 계동길 46번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인이 살고 있는 주택이라 들여다볼 수는 없다.

성성원의 집에 온 소태산 대종사에게 박사시화는 쌍둥이 동생 박공명선과 함께 입교, 경성의 첫 제자가 된다. 이때 중요한 사건이 서중안과 전음광이 당주동에 1개월 한정으로 20여 칸의 가옥을 빌려 거처를 옮긴 뒤 경성 임시출장소라 명명했던 것이다. 이곳은 현재 경복궁 앞 세종문화회관 뒤편으로 흔적은 찾을 수 없으며, 교단적으로도 기록이 거의 없다. 다만 박사시화를 따라 온 궁가의 여인이 소태산 대종사에게 감동하여 함께 살던 침모까지 입교시키니, 이가 바로 이동진화와 김삼매화다.

이렇게 첫 상경을 마친 대종사는 총부회관(도치원) 건축이 진행되고 있을 즈음 10월 "경성에서 만날 사람이 있다"며 갑자기 상경해 창신동 이동진화의 수양채로 찾아간다. 그리고 11월22일 교단 초기의 법과 교화를 세운 민자연화·이공주·이성각 모녀와 이틀 뒤 이성각의 딸 김영신까지 만나 법명을 내린다.
▲ 박사시화가 일행을 모셨던 성성원 선진의 집.
상조금 저축해 영산 논 매입에 보태

이듬해 2월5일 이공주의 30회 생일 잔치는 소태산 대종사를 모시고 이공주 집 사랑채에서 열렸다. 이공주는 이후로도 소태산 대종사가 상경하면 자신의 집 사랑채에 모시고 설법을 듣고 수필했으며, 이 기록은 소중한 법문으로 남아있다. 원기13년까지 총부도 아닌 곳에서 가장 많은 법을 설한 곳이 바로 이 이공주의 자택이다.

이공주의 집은 현재 계동 103-15번지로 성성원의 집과 불과 80m 떨어져 있으며, 성성원 자택처럼 개인소유라 들어가 볼 수 없다.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가 '계동출장소', '계동연구회'라 부르며 원기11년 경성출장소 설립까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창신동 이동진화의 집과 함께 자발적 모임을 이어갔으며, 회원 10여 명이 상조금을 조금씩 저축해 훗날 영산 토지 매수에 보탰을 정도로 든든하고 견고한 조직이었다.

그러니 '약자가 강자되는 법문' 등 많은 법을 설한 터전 이공주 자택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그런데 공원이 된 돈암동회관과는 달리 이공주 자택과 성성원 자택, 그리고 북촌길 코스의 최초 창신동 교당터는 지금도 거래가 되고 있어, 교단 2세기에 다시 매입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답사를 다니며 더러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서울원문화해설단이 방언공사의 심정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펼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존중과 배려의 은덕, 도심 속 시민선방

중앙고등학교 정문을 보고 다시 내려오는 계동길은 북촌길 코스의 하이라이트로, 이후 북촌한옥마을을 통과해 시민선방으로 이어진다. 원기93년 고 이철원 대호법·김명환 종사의 희사로 마련됐다가 원기89년 현재의 화동 10-2번지로 옮긴 원불교시민선방은 도심 속의 선방이자 새삶회의 정신개벽운동의 터전이 되고 있다.

개벽순례를 함께 한 서문성 교무는 "시민선방과 함께 원불교여성회가 운영하는 '차향기 듣는 집-문향재'는 2시간의 개벽순례 중간에 쉼표를 찍는 곳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계동길 이전의 은덕문화원은 세상에 원불교를 알리는 공간임은 물론, 이웃종교나 사상을 한번도 깎아내린 적 없는 소태산 대종사와 교단의 존중과 배려가 담겨진 다양한 담론의 터전으로 의미가 깊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도 손에 꼽는 여행지이자 문화유산들이 즐비한 북촌길 코스는 창덕궁에서 시민선방까지의 2시간 코스와, 천도교대교당, 조계사까지의 확장된 3시간 코스로 운영된다. 4월25일~5월1일 7일 동안 서울원문화해설단이 개벽순례를 이끌 예정이며, 이후로도 순례는 계속될 계획이다. 친구들이나 단원들끼리 경성교화에 관한 책 한권 들고 걸어봐도 좋을 북촌길 코스, 어떻게 걸어야 할까.

서문 교무는 "인파가 많은 서울 도심인만큼 10명 안팎의 소그룹들을 추천한다"며 "곳곳에 우리의 성적지와 어우러져있는 서울의 문화유산을 보는 한편, 중간중간 예쁜 찻집이나 갤러리 등도 들러 쉬엄쉬엄 산책하듯 걸어보자"고 전했다.
▲ 소태산 대종사가 총부 외에 가장 많이 걷고 큰 인연들을 만났던 계동길에 성성원의 집터가 있다.
교단이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를 맞아 소태산 대종사의 경성교화 발자취를 따라 걷는 개벽순례 코스를 개발하고 이를 안내할 '서울원문화해설단'을 양성했다.
본지는 4월 한 달간 해설단과 함께 순례길을 걸으며 이를 소개한다. 지상에서 만나본 소태산 대종사의 경성교화 발자취로 교단 2세기 서울교화를 다시 생각해보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