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택 원로교무
27분은 끊음도 없고 멸함도 없다는 뜻이다.

무단무별분은 진리의 법신 자리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의 자리를 설명한 것이다. 이 자리에 들어가면 끊어 버릴 망념이 없고, 일어나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멸할 것이 없다. 나도 가끔 상상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잘 될 것을 가정하여 마음속 기쁨을 느끼곤 하는데 이러한 것도 모두 욕심이고 망념이다.

정산 종사는 "離慾發心曰誓願" 욕심을 떠나 마음을 발함이 서원이라 하였듯이 욕심과 망념을 가지고는 원만한 공부길을 잡을 수 없고 입정처(入定處)에 이를 수 없다.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如來-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 須菩提야 莫作是念호대 如來不以具足相故 得阿耨多羅三먁三菩提라하라

"수보리야! 네가 만약 여래가 상을 구족한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 라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수보리야! 간곡히 부탁하노니, 이와 같은 생각을 짓지말라. 여래가 상을 구족한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 라고."

여기에서는 주종본말(主從本末)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사리연구로 지혜가 열린 사람은 주종본말을 잘 분석하는 사람이다. 주이면서 본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각)이며 종이며 말은 구족상이다.

무상정등각을 얻었기 때문에 구족상이 생기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근본과 주를 세우면 말과 종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정산종사법어〉 도운편 6장)에서 정산종사는 "오직 못난 도인이 의식을 걱정하며, 세상에 서지 못함을 근심하리요"라고 했다. 공부인이 근본에 힘쓰고 공부하면 의식주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대종사는 무상정등각의 경지에서 모든 교리와 제도와 의식을 개혁했다. 원불교는 다른 종단과 달리 남녀노소 재가출가에게 똑같이 단계별로 30계문을 주며, 법복과 법락도 차별 없이 주고 있다. 이는 진정한 대승행을 원불교 교단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說諸法斷滅가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法에 不說斷滅相이니라

"수보리야! 너는 혹 이와 같이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뇩다라샴막삼보리를 발하는 자는 모든 법을 단멸해버린 상을 설한다고.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을 짓지 말라. 어째서 그러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한 자는 법에 있어 단멸한다고 하는 상을 설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금강경을 잘못 공부하면 형상으로 나타난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라고 하여 관념으로 치우칠 수 있다. 원불교 교리와 연결시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단멸이 되었다는 것은 진공이다.

진공 뒤에는 묘유가 따라오고, 게송에서 구공(俱空) 뒤에는 구족(具足)이 따라 오고, 공적(空寂) 뒤에는 영지(靈知)가 따라오듯 부처님이 무상정등각을 마음으로 얻었고 그 얻음과 동시에 외형으로는 32상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형상으로 나타난 것을 무시하지 않기에 단멸상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대종경〉 인과품 16장)에서도 "생멸 없는 진리와(진공, 주主, 본本, 체體) 인과보응의 진리를(묘유, 종從, 말末, 용用) 믿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고 한 것이다.

28분은 부처님의 심법(心法)은 받을 생각도 말고 탐하지도 말하는 뜻이다.

須菩提야 若菩薩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로 持用布施라도 若復有人이 知一切法無我하야 得成於忍하면 此菩薩이 勝前菩薩의 所得功德이니

"수보리야! 만약 어떤 보살이 항하사 같은 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가져 보시에 사용할지라도 만일 다시 어떠한 사람이 있어 일체 법에 아(我)가 없음을 알아서 인(忍)을 성취함을 얻으면 이 보살이 앞에 말한 보살의 얻은바 공덕보다 승(勝)하나니라."

금강경에서는 그 동안에는 칠보보시를 사구게보시와 비교를 했왔는데 여기에서는 '知一切法無我'와 비교한다. 지일체법무아라는 것은 부처님의 근본 교리중의 하나인 삼법인을 알아야 한다.

삼법인(三法印)이란 불변의 진리라는 뜻으로 만유의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어서 실로 나라할만한 실체가 없는 것으로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일체 사물과 인간 그리고 그 마음의 현상은 시시각각 생멸 변화 변천하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일체의 번뇌와 속박에서 벗어나는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말한다.

열반이란 보통 죽음을 뜻하지만 살아 있을 때는 일심의 경지, 삼매의 경지를 의미하고 원불교에서는 일상생활속에서 그일 그일을 하면서 일심이 집중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무시선을 말하고 있다. 지일체법무아에서 법(法)과 제법무아에서 법이란 경계를 말하는 것으로 모든 경계에 무아를 이룬다는 것이다. 무아를 이루는 방법도 좌선과 선정에 들 때 하는 정시(靜時) 무아와 일상 생활 속에 하는 동시(動時)무아가 있다.

이 무아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무아가 되면 무상(無常)이 되고 무상이 되면 열반 삼매경을 이루게 된다. 무아가 되면 인(忍)을 얻는다고 하였는데 인은 인욕(忍辱)을 말하며, 무아를 이루는 과정에는 인욕이 따르게 된다.

세상에는 인욕을 행하지 못하므로 공부를 이루지 못하거나 자신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일상 생활의 경계에서 무아를 이룬다면 그 공덕이야 말로 칠보보시 보다도 더 큰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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