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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 대전충남교구 대전교당 정길안 교도
신앙인 / 대전충남교구 대전교당 정길안 교도
  • 최지현 기자
  • 승인 2016.04.15
  • 호수 17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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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생활은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사별, 경제적 어려움 등 시련 이겨낸 감사생활
원100주년기념대회 일원가족 함께 참여할 것
화사한 봄꽃의 유혹에 엉덩이가 들썩이는 4월, 벚꽃 비 내리는 길을 따라 대전교당에 도착하니 길타원 정길안(70·吉陀圓 鄭吉安) 교도가 꽃처럼 온화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원불교와 인연은 금산에서 시작됐습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인삼 집산지인 금산에서 남편과 함께 인삼 판매를 하면서 생계를 꾸렸습니다. 평일·주말 할 것 없는 장사 속이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할 엄두가 안났죠. 그 시절 큰 이모가 내려올 때면 꼭 저희 집에 들러서 '원불교에 가자'고 했습니다."

슬하에 4남매를 둔 그는 생계를 위해 밤을 새며 장사를 했다. 대전교당에 다니던 큰 이모는 그와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바쁜 살림살이로 인해 헌공금을 전달하고, 큰 행사 때 이모를 따라 대전교당에 몇 번 가본 게 전부였어요. 결국은 이모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입교하지 못했죠.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가 꼭 데리고 가야 한다며 '원불교에 가자'고 했어요. 큰 이모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 '매주는 못가지만 시간이 될 땐 꼭 참석하겠다'고 말한 뒤 금산교당에서 입교하게 됐습니다."

어려운 생계 속에서 큰 이모와의 약속을 지켜낸 그였지만, 교당 생활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큰 시련을 겪는다. 남편이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가족들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부채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열반하고, 알지 못했던 부채를 떠안게 돼 소송까지 당했죠. 결국 패소했고, 모든 재산이 경매에 부쳐졌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남편에게 못다 해준 마음을 천도재로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저와 가족, 그리고 남편을 위해 금산교당 교무님과 교도님들이 정성을 다해 천도재를 지내주었어요. 그 이후로 법회에 빠지지 않고 출석했고, 네 명의 아이들도 모두 함께 입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인삼 농사일을 도맡아하던 남편의 부재는 너무도 컸고, 그는 결국 금산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대전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아무 연고도 없던 대전에서의 삶 역시 순탄치 않았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식당 허드렛일부터 분식집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막내가 초등학교 6학년, 큰 애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느라 아이들 입학식·졸업식에 단 한번도 찾아가지 못했죠. 막막한 생계를 책임지느라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통에 교당에 갈 수 없었어요. 집에 일원상도 모시지 못한 채로 교전을 펴 놓고 조석심고를 하며 '법회에 갈 수 있도록 일요일에 쉬는 직장을 가지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결국 새 직장을 얻었고, 비가 내리던 날 젖은 신발을 품에 안고 대전교당을 찾아갔습니다."

남편과의 사별, 법정 소송, 경제적인 어려움 등 수없는 시련이 닥쳤지만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어떤 경계에 처했을지라도 감사생활 하자'는 굳은 신념이었다.

"저의 신앙생활은 감사생활입니다. 항상 '제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도록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는 감사기도를 올리죠. 당뇨로 수술을 하고, 시력이 좋지 않지만 매일 상시일기를 작성하고 교전을 써내려 갔어요. 그렇게 쓴 노트가 큰 박스로 서너 박스가 넘어요. 원기96년부터는 감사노트와 생활일기까지 함께 쓰고 있어요."

그는 유명한 '원불교 알림이'다. 4남매·손자녀·며느리까지 모두 입교시켜 일원가족을 만든 그는 시시때때로 직장·동창모임·주변인들에게까지 "원불교 교당에 간다"고 알리고 있다.

"자식들이 결혼을 할 때, 꼭 우리 가족은 종교가 같아야 한다고 당부를 했어요. 고맙게도 아들들이 며느리를 소개할 때, 입교증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손자는 3~4살 때부터 둥근 형태만 봐도 '일원상 부처님이다'라고 말을 했고, 초등학교 때는 그림일기에 일원상과 법당, 교전까지 그려냈죠. 평소에 동창 모임, 주변사람들에게 교당에 간다는 말을 자주합니다. 가는 곳마다 원불교 교도로서 사명감을 갖고, 주변과 인연을 맺으면서 살다보니 감사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저녁 8시30분~9시30분 손자녀와 함께 목탁을 치고 성가를 부르며 기도를 올린다는 그는 일원가족이 곁에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5월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에 모든 가족들이 함께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처음엔 일요일이다 보니 가족들이 함께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어요. 이렇게 작은 일이라도 하고자 하는 일이 원만성취 될 때 그 기쁨에 감사함을 느끼고 환희심에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엄마가 하는 법 공부길에 묵묵히 함께 걸어주는 가족들이 있어 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한 줌 바람에 실려오는 봄향기가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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