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벤쿠버교당
개인이든 교당이든 빚이 있으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심리적으로도 위축될 뿐 아니라 써야할 돈을 쓸 때조차도 그 빚의 무게까지 감당하며 마음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죠. 그래서 빚지는 일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습니다. 피하고 싶은 일이죠.

하지만 금전적으로 드러나는 빚이 아닌 경우에는 문제는 달라집니다. 공짜도 좋아하고, 힘 안들이고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하죠. 재물이든 노력봉사든 무엇이든지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너나 할 것 없이 복을 받는 것은 좋아하고, 짓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인거죠. 나쁜 일만도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늘 그렇게만 살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설사 한동안은 그렇게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영생을 일관할 수는 없다는 거죠. 짓지 않은 복을 계속 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회사에서 사장생활 10년에 예순도 안 되어 바보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출근만 하면 직원들이 운전에서부터 인터넷 검색, 서류 작업, 전화걸기 까지 모든 일을 대신해주다 보니, 자력을 갖출 기회를 갖지 않았고, 그 상태로 퇴직을 하고 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는 거죠.

그래서 뒤늦게야 안 하던 일 배우려니 너무 힘이 든다고 말입니다. 남의 도움이 좋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죠. 그러니 자력이 필요합니다. 스스로의 힘이라야 자유로울 수 있는 거죠.

어릴 때에는 타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인연들로부터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죠.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후부터는 스스로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자력없는 사람에게까지 도움과 보호를 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개개인의 삶도 건강하고 자유로울 뿐 아니라, 재물이나 기회나 모든 것들이 선진에서 후진으로, 부모에게서 자녀로, 가진 자에서 부족한 자에게로 흐르며 건강한 세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타력생활의 유혹은 달콤합니다. 수고로움 없이 다른 사람에게 덕을 보고 싶은 거죠. 그러니 자력을 공부삼아 양성해야 하죠.

너무 어리거나 늙거나 병든 상태가 아니라면 노력을 해서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힘을 갖춘 연후에 다른 사람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죠. 혼자 살 수도 없는 세상이구요. 하지만,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 덕을 보려하고, 의지하고, 도움을 받으려는 마음은 결국 스스로를 망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적인 자활력, 경제적 자립력, 정신적 자주력을 공부삼아 길러나가야 합니다. 나태와 안일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건강을 돌보며, 욕심이나 어리석음에 흔들리거나 가리지 않을 지혜와 마음의 힘을 갖추면서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죠. 아무리 남에게 덕 보고 싶은 유혹이 달콤하더라도 공부삼아 내 힘을 길러나가야 합니다.

그 길만이 우리에게 보다 안정적인 자유와 영원한 행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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