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수첩

▲ 이은전 교사/강서고 퇴직
명예퇴직 통보가 온 건 아니지만 거의 결정됐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정리되어 가고 있다. 주변에서 혹시 안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내 대답은 그럼 아이구 좋아라 하고 감사히 받으면 된다고 하니 그럼 퇴직 결정이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다시 묻는다.

그 때도 내 대답은 아이구 좋아라 하고 또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다. 퇴직을 하면 몸이 힘든데 쉴 수 있으니 좋고 퇴직이 되지 않으면 지금 나의 모든 처지가 너무나 아까우니 이것을 다시 할 수 있어서 좋다. 이런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나는 수개월을 치열하게 공부했다.

처음에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오로지 쉬고 싶은 마음에 퇴직해야겠다 생각했지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지를 공부해보니 내가 꽉 잡고 있는 것이 있었다. 돈이었다.

연금이 나오지만 현재 월급의 반밖에 되지 않고, 또 앞으로 남은 정년 11년을 채운 뒤의 연금과는 금액이 많이 차이가 났다. 나는 아픈 곳이 많아서 보험을 들 수가 없는데 이때까지 병원은 누구보다도 많이 다녔다.

그때마다 학교 보험이 있어서 혜택을 많이 봤는데 앞으로 나는 병원 신세를 더 많이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내가 돈을 꽉 잡고 있다는 것이 보였고 잡은 것을 보니 놓아졌다. 적게 먹고 작게 살면 된다 싶고 큰 병이 닥쳐서 병원비가 쏟아지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공부하기로 했다.

다음은 내가 너무 젊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열심히 근무하고 있으니 나랑 놀 사람이 없고 앞으로 남은 50년을 죽을 날만 향해서 멍청하게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은 불안이다. 이것도 내가 큰 결정을 내리려고 하니 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와서 불안해 하는구나 싶으니 놓아졌다. 어쩌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만두면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쉬다 보면 에너지가 다시 생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내가 잡고 있었던 것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올해는 어떤 프로그램, 어떤 수업을 펼쳐야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시작으로 1년 내내 하루 종일 화장실 갈 시간도 아낄 만큼 매달린다.

알찬 프로그램들로 학생들이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고 그러면 나는 다시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연구에 매달린다. 또 하고 싶은 것도 많아 퇴근 후나 방학 때면 한가한 날이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악기도 배우고 싶고 춤도 배우고 싶고 인문학 강의도 듣고 싶은 내 소망은 시도조차 해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출근 시간에 문득 운전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즐거움이 끊어진 지 몇 년이나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나를 돌아보니 끔찍했다. 죽는 길인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레밍 쥐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제 그만 멈추어야겠다,

나를 돌아봐야겠다 싶으니 지금 한 번 끊어보는 것이 필요했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꽉 잡고 있다 싶으니 이것을 놓고 싶었다.

이렇게 퇴직을 결정하고 보니 세상이 다시 보였다. 학생들이 더 예뻐 보이고, 그동안 그렇게 불만이 많았던 교사라는 직업이 참 혜택이 많다는 것을 알겠고, 강서고의 환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런 생각들이 몰려올 때는 퇴직이 아까워서 신청서를 내지 말까도 고민했다.

나는 또 이런 것들을 아까워하면서 손해 보지 않겠다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퇴직을 결정하면 퇴직을 꽉 잡고 있고 퇴직 안하겠다고 결정하면 안 하는 것을 꽉 잡고 있었다. 문제는 퇴직을 하고 안 하고가 아니라 내가 이것도 잡고 저것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걸 깨닫고 보니 빈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할 수 있었다. 나는 현재 몸이 내가 감당이 안될 만큼 힘들어서 쉬고 싶다,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것은 감수하겠다, 현재 내가 경계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후에 깨닫게 되고 그 때 가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어떤 일이든 진짜 알맹이는 내가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다.

현재 내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나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이다. 퇴직하면 쉴 수 있으니 좋고 퇴직이 되지 않으면 강서고를 다시 다닐 수 있으니 좋다. 이렇게 나는 퇴직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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