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광 교무/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얼마 전 어느 꼬마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듣게 된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아저씨인 내가 매일같이 꼬마부처님들 앞에서 '오빠라고 불러다오'하며 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오빠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꼬마부처님에게 불공을 잘해서 오빠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게 됐다. 내가 오빠라고 듣고 싶은 그 꼬마부처님에게 직접 불공을 했던 것인데, 그 불공은 다름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맛있는 과자를 준 것이었고, 그 후 '오빠라고 불러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누구지'라고 물어보면 자동적으로 '오빠요'라고 불리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상황에 맞는 불공법을 선택해 일을 성공시키는 것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밝혀준 불공하는 법은 신앙과 수행이 떠나지 않는 방법이다. 당처에 당한 죄복을 당처에게 비는 것이 사실적인 동시에 반드시 성공하는 불공법이 되고, 그 일의 성질을 따라 적당한 기한으로 불공을 하는 것이 또한 사실적인 동시에 반드시 성공하는 불공법이 된다고 말씀했다.

만약 어떤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 일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 사실적이지 않았거나, 진리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는 바로 불공의 대상을 잘 알지 못하고 일방적인 불공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꼬마부처님에게 맛있는 과자 대신 쓰디쓴 약초뿌리를 주면서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한다면 과연 그 꼬마가 나를 오빠라고 불러줬을까. 아마 나를 본 척도 안 했을 것이다. 불공의 대상과 상황을 세세하게 살피고 연마하는 것 또한 불공의 시작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둘째는 대충 공들여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도 있듯이 어느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그 일이 성공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세세하게 하나하나 정성스러운 공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쉽게 간과하는 것은 소태산 대종사가 우주 만유는 곧 법신불의 응화신이니, 당하는 곳마다 부처요, 일일이 불공법이라 했는데 우리들은 진정처처불상과 사사불공을 실지로 하고 있는가. 실지로 처처불상 사사불공하는 마음자세로 살아간다면 공경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 정성스럽게 대할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떠한 일이든 보상심리를 전제로 했던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불공하는 법의 최고는 무아봉공, 즉 바라는 상이 없이 나를 없애고 공익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이다. 무아봉공의 자세로 불공을 하게 되면 궁극적 목적으로 작은 나에 국한되는 이기심을 놓고 큰 나(大我) 또는 참나(眞我)를 이루게 되어 어떤 일이든 성공 못할 일이 없다. 혹 실패를 했을지라도 원망이 아닌 은혜의 소종래를 발견하여 감사생활로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아무리 사소하고 쉬운 일이라도 불공하는 법을 간과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정성을 다해 불공한다면 성불의 길도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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