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대정진기도 체험

▲ 황인덕 교도/원남교당
매주 수요일 저녁, 북촌에 위치한 서울시민선방(원장 한은경)에 가면 수요선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년과 직장인 등 서로 다른 교당,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교도와 비교도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법회와 강연 및 설법을 듣고, 프로그램의 마지막 회화시간은 언제나 한은경 교무의 '한 말씀'으로 마무리된다.

교무님은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 D-100을 앞둔 시점부터 '100년성업 대정진 기도문'과 '일일체크표'를 한사람 한사람에게 나눠주며, 모두가 이 기도에 함께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전국의 모든 교도가 같은 시간에 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위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교무님의 권유는 평소에 기도를 소홀했던 교도들에게도 다시금 챙겨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하루 빠졌을 때는 다음 번 기도할 때 두번하면 된다는 처방까지 있으니, 한번 먹은 결심이 무너져도 계속 이어나갈 방도까지 마련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매일 새벽,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당인 원남교당으로 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거주 중인 고시원 방에서는 좌선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굳이 하고자 한다면 침대 위에서 겨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도를 제대로 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아무래도 잘 나지 않는다. 교당에 가려면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교당까지 걸어가거나 늦을 것 같으면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러다보면 일어나려 하는 그 순간에는 그렇게 못 일어날 것만 같던 그 집요한 잠이 어느새 거짓말처럼 물러나 있다. 나는 내 집에 내 법당으로 삼을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을 접고 물러나 있었다면 "우주가 내 집, 교당이 내 법당일 수 있다"는 걸 이렇게 누리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법당은 기운이 어려있는 공간이기에 확실히 기도가 잘 되는 느낌이 든다. 집에서 혼자서 하는 것은 분명히 그에 못 미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집에서는 잘 안 되는 그 기운이 사실 내 집의 기운이고, 내 기운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도가 잘된다고 하여 교당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집에서도 계속 수양을 쌓아 우리집을 기도가 잘 되는 집으로 만들어 나가면 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서인지 나는 교당에서 기도를 하지만 교당에서 기도하는 게 더 낫다고는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력기도로서는 집 기도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원남교당에서는 좌선 후 기도시작 전에 축원인 명단을 호명하는 시간이 있다. 한두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당 소속으로 있는 모든 교도들의 법명이 이렇게 매일 기도전에 올려지고 있었다. 나 역시 내가 모르는 동안에도 이렇게 교당으로부터 기도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도 이 100년성업대정진 기도를 한번도 빠짐없이 나간 건 아니다. 그러나 '그래도 다시 기도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게 어제 못 일어났다 해도 오늘은 다시 일어나 지속할 수 있게 하였고, 이제는 새벽에 기도를 하지 않으면 뭘 빼먹은 느낌에 하루가 허전하다. 나에게 있어 이 아침기도가 든든한 밥한끼를 먹고 가는 것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몸의 양식인 아침밥처럼 마음의 양식인 아침기도는 하루를 든든하게 챙긴 마음으로 시작하게 한다.

기도를 하면서 파도치는 듯한 마음의 요동을 조금씩 출렁출렁한 수준으로 달래가고 있고, 가족들과 겪었던 갈등의 기복도 어느새 출렁출렁 다스려졌다. 취업준비생 동생은 취직이 됐고, 경기가 좋지 않아 일이 잘 들어오지 않던 아버지도 젊을 때보다 일이 더 들어오는 희한한 호재에 조심스레 감사하고 있다. 집안의 걱정주름살이 하나둘 펴지면서 어머니의 잔소리도 물결처럼 부드러워졌다. 기도를 하면서 문득문득 달라진 내 삶 주변의 긍정적인 변화들을 마주할 때, 이것이 기도의 효력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직접적인 인과는 알 수 없고, 미혹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원불교 교도로서 일상적인 하루를 보다 특별하게 시작하는 비법을 알게 됐고, 특별해 보이던 일을 일상으로 실천해나가는 것이 가장 큰 기도의 효력이 아닐까. 100년성업 대정진 기도에 동참할 수 있어서, 이 기도를 계기로 매일 든든한 마음아침밥을 챙길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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