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의 문화코드

▲ 허경진 교도/강북교당
얼마 전 교당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내 손을 잡으며 신문에 나오는 글 잘 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더니 웃으면서 "내가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몰라도 잘 보고있다"라고 하시는 거다. 순간 뜨끔 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글을 더 쉽게 쓰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쉬운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는 것을 항상 유념하고 글을 쓰려고 하지만, 어르신들이 접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내용을 다룰 때가 많으므로 더 쉽고 간결하게 써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나도 신문에서 어떤 전문가가 쓴 글을 읽을 때 조금만 어려운 단어나 문단이 나와도 흥미가 떨어지면서 그 글을 그만 읽게 되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쉬운 글을 쓰도록 해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운 문자를 익히고 학문을 닦는 것은 상류계층에만 허락되거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자신들을 우월하게 보이도록 하여 아래 계층을 지배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문자와 학문 익히는 것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에 세종대왕은 많은 백성들에게 글을 익히도록 하여 주기 위해 한글을 만들게 되지만 그것을 반대하는 많은 신하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문자라는 것을 그들만의 문화로 가지고 싶어 했던 상류계층의 욕심 때문에 한글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을 뻔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극복하여 만들어 준 한글로 많은 백성들이 글을 익히게 된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나오는 많은 한글 소설들이 양반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그들이 두려워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어찌됐든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면서도 쉬운 문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낮은 문맹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문자나 학문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음악에서도 왕권이 아주 강했던 바로크시대의 음악은 어려운 작곡기법들이 많이 사용된다. 따라서 연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감상하며 이해하는 것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다가가는 곡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하의 음악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18세기, 고전시대에 접어들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시민들의 정신을 깨우자는 계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음악에서도 간단한 반주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선율이 주로 연주되는 곡들이 주를 이루며 음악의 스타일이 크게 바뀌게 된다. 대표적인 곡을 생각해보자면 모차르트의 곡들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요즘도 클래식음악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주로 고전시대의 음악가인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음악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클래식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고전시대의 음악 몇 곡은 그 선율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이니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쉬운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간 내용을 다루거나 음악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보기 위해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대상이 많은 대중일 때는 할 수 있는 한 쉽게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예전에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백범 김구 기념관에 방문한 적이 있다.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시대 순으로 관람을 한 후 벅차면서도 경건한 마음으로 읽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몇 구절이 지금도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전재동포구호사업 때 우리 교단과도 깊은 관계가 있었던 김구 선생은 백성 모두의 정신의 힘을 키워야 우리나라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글을 썼다.

그의 호 백범의 백은 백정이라는 뜻이고 범은 범부라는 뜻으로, 백정은 소돼지를 잡는 일을 하는 천하다고 생각되어진 사람들, 범부는 가난하고 힘이 없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말한다. 김구 선생은 백정같이 천하고 범부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애국심과 지식을 가져야 독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호를 백범으로 정한 것이다.

이렇게 위의 이야기들 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쉬운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두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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