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盌挹茶水  千漚何蕩發  圓光散如珠  一珠一尊佛  浮生彈指頃  千億身怳惚
如是開手眼  如是分毛髮  悟處齊點頭  參時同竪拂  誰師而誰衆  無我亦無物
茫茫恒河沙  普渡非喚筏  泡花幻一噓  空色湛片月  三生金粟影  坐忘何兀兀
萬緣了非眞  焉喜焉足喝  經傳陸羽燈  詩呪玉川鉢



작은 찻잔에 찻물을 따르니 / 어찌 천 개의 거품이 저리 일어나나 / 둥근 빛 흩어져 구슬 같은데 / 하나의 구슬마다 한 분의 부처님이 있네 // 떠 있는 인생이 손가락을 튕기는 사이에 /천 억 개의 몸이 되어 황홀하도다 / 이처럼 천 개의 눈이 열리고 / 이같이 터럭이 나뉘는 도다 // 깨달은 곳에서 고개를 함께 끄덕이다가 / 참선할 땐 동시에 머리를 쳐.드니 / 그 누가 스승이고 대중인가 / 나도 없고 또한 만물도 없도다 // 아득한 강의 모래 같은 중생들 / 모두 건너가지만 뗏목을 부르는 것은 아니네 / 물거품의 꽃은 한번 불자 모두 스러지고 / 공과 색은 조각달을 즐기는 구나 // 삼생(三生)의 금속영 여래께서는 / 앉아서 다 잊는다는 좌망이 어찌 그리 우뚝하신가 / 온갖 인연이 참이 아님을 깨달으니 / 어찌 기뻐하며 어찌 화를 내리 // 육우는 다경(茶經)으로 등불을 전하고 / 시를 지어 옥 같은 시내의 바리때를 예찬하느니

'차를 따르면서(挹茶)'-이상적(李尙迪 1804-1865 조선 후기의 문인)

이상적의 본관은 우봉(牛峰), 호는 우선(藕船), 역관 집안 출신으로 추사 김정희의 문인이었으며 벼슬은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저서로 '은송당집' 24권과 편지를 모은 '해린척소'가 있다.

이 작품은 차를 마시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우치는 일종의 불교적인 선시이다. 시인의 직관력과 표현력이 탁월한 이 시는 대단히 심오하고 난해하다. 그것은 시인이 시와 도를 따로 구분하지 않아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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