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도휴 정토/성지송학중 행정실장
성지송학중학교를 일터로 생활한 지 어느덧 3년이 됐다. 원기99년 3월에 영산성지고등학교에서의 15년을 뒤로 하고 같은 법인 내 성지송학중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성지송학중학교는 내게 일터이기도 했지만 큰아이가 졸업했고 작은아이가 3학년에 다니고 있었기에 더욱 특별한 곳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시간을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교사가 아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화두처럼 마음에 새기며 보냈다. 그러면서 아이의 친구이기도 하고 후배이기도 한 120여 명의 아이들이 눈을 넘어 마음으로 들어왔다.

영산성지고등학교에서의 내 수행은 주로 수양과 연구에 집중하는 공부였다면 이 곳에서는 취사 공부에 집중하게 됐는데 자연스럽게 그리됐다. 삼학의 열매는 단연코 취사이다. 작업취사가 되지 않는 앎은 사실은 모르는 것과 같다. 그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체험을 통해 증득한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취사의 열매는 정신수양과 사리연구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가 취사가 수양과 연구없이 그냥 되는 줄로 착각하는 것인데 그런 일은 정말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대종사께서도 삼학병진을 말씀하시고 그러한 삶을 보여주며 살다 가신 것이 아니겠는가!

학교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복도와 현관을 비질하는 것이다. 더러워진 바닥을 쓸지만 마음의 티끌을 쓸어버리는 일이기도 하고 아침밥 먹으러 가는 아이들과 출근하는 교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학교의 기운을 읽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행정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무실에만 앉아 있으면 학생들과 접할 기회가 적다. 이렇게 비질을 하고 쓰레기를 주우며 학교를 돌아보는 것은 아이들과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고 24시간 학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생활을 보게 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매주 수요일엔 학생회 아이들과 만나 학교 시설 사용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양심적 태도나 생활의 기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이들의 생활태도나 리더십에 긍정적인 변화가 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는데 불 켜진 창을 보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다. 달콤한 사탕을 꺼내 주거나 따뜻한 코코아를 타주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가만히 들어주며 공감을 해주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마음공부를 하는 시간이 되곤 한다.

지난해는 1년간 학교 법당에서 매주 열리는 학생법회를 지원하게 됐는데 처음엔 간식 때문에 그저 약간의 호기심으로 오지만 법회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원불교를 알아가는 아이들을 보게 됐다. 이러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학교라는 작은 공간이 청소년 교화의 텃밭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갈수록 새록새록 깨닫게 된다.

올해는 학교에서 원학습코칭을 하고 있다. 행정실과는 무관한 일인 듯 생각될 법도 하지만 빠지지 않고 함께 하고 있다. 첫 시간에 배우는 사람이 불이 붙지 않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불이 붙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에 무한 공감이 갔다. 불은 옮겨 붙는 것이고 교육은 보고 배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참 앎을 통한 작업취사를 할 수 있을 때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완성되는 것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학교 교육이 점점 무뎌지고 교육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가르치는 사람이 작업취사가 따르지 않는 교육, 보고 배울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닌 말로만 하는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만 한다. 이것은 교화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인데 스승이 살아있는 부처, 움직이는 부처인 활불이 아니면 제자가 본래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부처, 움직이는 부처의 성품을 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 소소영령하게 펼쳐지는 성지송학중학교에서의 일과 속에서 학교는 활불들의 세상으로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깨닫는다. 내가 처한 그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통해 삼학의 열매인 취사공부의 꼭지 하나 따고자 손을 내민다.

끝까지 구해서 얻으라. 진심으로 원해서 이루라. 정성껏 힘써 되게 하라는 대산종사의 말씀 받들어 오늘도 살아 움직여 바람을 불리는 활불의 삶으로 진정한 앎의 지혜를 완성해 가기를 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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