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의 힘

▲ 김산 교도/대전교당
1947년 에든버러패스티발이 열렸다. 2차세계대전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정신을 치유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스코들랜드 에든버러는 그렇게 8월 중순부터 3주 동안 열리는 세계적축제가 됐다. 그리고 영국의 리버풀. 작은 공업도시였던 리버플이 연간1500만명의 관광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수없이 많다. 많은 성공사례는 모두 지역문화 활성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지역문화에는 늘 누군가의 꿈이 있고 헌신이 있고 그리고 누구나 알 듯이 실패라는 비난과 무관심 그리고 이기심도 있다. 그리고 그 무서움을 극복했느냐를 물어보면 에든버러가 되고 리버플이 되고 부산국제영화제가 되고 일본 마쓰리가 된다.

그리고 여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사라진 땀과 기대가 있다. '대전 차 없는 거리축제'. 늘 차로 매연으로 가득찬 6차선 도로를 비워 사람으로 채우자는 의지로 시작된 행사는 지역상인들의 조직적인 반대. 시·구청간의 소통 미비 등 지역문화의 모든 단점을 노출하고 그렇게 축소되고 타협되고 지역 상인들의 민원이라는 한계점에 사라져 가고 있다.

당연한 결과라고 한다. 시의 일방적 관료주의가 만든 전시성 행사라 한다. 교통 불편을 유발하고 상인들에게 현실적 매출로 돌아가지 않는다 한다. 그렇게 모두들 단기간의 결과물 그리고 누군가의 민원이 상인들의 뜻이 되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모든 행사가 불허되고 있다. 주최가 누군지는 관심이 없다. 목적이, 아니 그저 모든 것이 멈추고 있다. 누구가 불편하다는 민원만 접수되도 아니 접수되기 전에 이미 불허되고 허락되지 않는다.

에든버러든 리버플이든 마쓰리든 이곳에선 모두 성장을 멈췄다. 그저 두 손을 놓고 서로만 당황한 채 바라보고 있다.

원도심활성화, 청년문화 활성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 등 어떤 뜻이건 모두 민원에 함몰되고 마치 블랙홀처럼 지역문화의 성장점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사실 익히 알고 있었다. 늘 그렇듯 관료사회의 관심은 지역문화가 아니라는 걸, 화합하고 결집하지 못하는 지역문화계도 또 그렇게 볼멘소리에만 그친다는 걸 청년들은 마치 유명한 점쟁이처럼 예언하고 다녔다. 지역언론 역시 아직은 비평보다 홍보성 글이 먼저 요구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단련해 왔고 떠나는 동지들을 말리지 못했다. 관행사화 되어가는 단체들을 보면서도 안타까워 하되 비난 해 본 적이 없다.

지난 7년간의 맷집이 붙었는데도 작은 잽이라도 맞으면 비틀거리는 허약체질이지만 알고 있다. 멈추면 안 된다는 현실. 멈추고 싶은 생각이 없다. 대전광역시는 원도심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근대문화예술특구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원도심 내 근대문화유산과 지역문화예술을 융복합해 원도심 특성을 반영한 근대문화예술특구 조성을, 근대문화예술특구 조성은 옛 충남도청사와 부지에 문화관련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대흥동 충남도 관사촌은 문화예술촌, 대전역 동광장 일원에는 국립철도박물관을 유치해 도시재생을 한다. 하드웨어다. 좋은 하드웨어는 양질의 소프트웨어를 발생시킨다. 그렇게 청년들이 요구해 왔던 거점으로서의 문화지형이 이제 모습을 점차 들어내려고 한다.

대전에서 은행동에서 시작된 청년들의 영역도 점점 네트화해 전국적인 형태를 만들어 간다. 이미 대형공사 한 곳과 후원협의 중에 있다. 긍정적 결과를 바라보고 있다. 상인들, 관료들의 이상한 경제논리나 개별적 이기심을 탓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안다. 리버플이 에든버러가 단지 지역 활성화 되었다는 게 목적이 아니다. 함께 만들어나가는 우리를 만들고자 하는 뜻이 여기 대전에, 청년들에게 있다.

길은 멀다. 그러나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할 시간도 할 사람도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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