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철 신부/서강대학교 교수

'설악산'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설악산은 국립공원일 뿐 아니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보존연맹 엄정자연보전지역, 백두대간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전구역, 그리고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한마디로, 설악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엄격한 보호규정이 적용되는 지역이다. 헌데, 이런 설악산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2011년과 2012년, 양양군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환경부에 신청했다. 다행히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모두 부결됐다. 환경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색케이블카, 전국 산지개발의 신호탄

작년 4월, 양양군은 상부정류장 위치만 조금 변경한, 사실상 동일한 오색케이블카사업을 다시 신청했다.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이 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일어났다. 개인적으로는 8월10일, 오랜 기간 설악산을 지켜온 박그림 선생과 함께 케이블카 노선을 따라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오체투지 순례'를 했다. 하지만 8월28일, 국립공원위원회는 표결로 조건부 승인을 했다. 정치권력의 압력 말고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오색케이블카 공사는 설악산의 자연생태계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전국 산지 개발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이미 31곳의 산지에 케이블카 사업이 신청됐고, 정부는 '산지관광특구법'을 만들어 산지규제를 완화하려고 한다. 자칫하면, 4대강 사업의 망령이 산에서 되살아나, 우리의 아름다운 산이 모두 유원지가 될 판이다.

"왜 '신부님'이 그렇게 사회 현안에 많은 관심을 갖고 뛰어드나요? 중요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할 일 아닌가요?" 가끔씩 받는 질문이다. "사회 문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일이고, 저도 구성원의 하나입니다. 다만, 저는 천주교 신부에 고유한 동기와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합니다." 내 대답이다. 글자풀이로 종교는 '근본 가르침'을 뜻하니, 종교인으로서 종교의 가르침이 주는 근원적 삶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사회 현안에 접근, 발언할 수 있을 것이다.

'돈' 앞에 무너지는 환경과 사람의 생명

오색케이블카는 그 자체의 의미와 함께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시대의 징표'다. 두 번의 부결에도 기어코 케이블카 사업 승인을 따내고야 마는 집요한 개발주의의 뿌리는 바로 돈이다. 각종 제도들이 설악산을 겹겹이 보호해도, 경제 논리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적했듯이, 돈이라는 '새로운 우상'과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 자연은 글자 그대로 무방비 상태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현실은 사람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는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핵발전소의 유지와 확대, 사람을 합법적으로 값싸게 쓰고 버리는 비정규직법제도의 확대, 도박중독자를 합법적으로 양산하는 화상경마도박장의 증설, 백남기 농민이 상징하고 있는 쓰러져가는 농촌의 방치, 대다수의 사람이 '개·돼지' 취급을 받는 사회. 이 모든 것이 이윤 증대를 최종 목표로 삼는 우리 사회의 불행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종교의 현실 비판은 선택이 아닌 필수

종교의 가르침은 대부분 결국 사랑과 자비, 생명과 정의와 평화, 인권과 안전, 관심과 배려와 연대, 환대와 돌봄, 절제와 검약 등으로 수렴된다. 이 모두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고 환산해서도 안 되는, 인간의 삶에 지극히 소중한 것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물질만능주의와 소비주의는 종교가 제시하는 삶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종교의 현실 비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신부님, 활동하느라 그렇게 밖으로 많이 다니면 기도와 수행에 문제가 되지는 않나요?" 언제나 문제는 '과도한 활동이 아니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활동'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진단이다. 이 진단이 옳다는 것을 나는 체험으로 느낀다.

활동과 영성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보완한다. 후쿠시마 사고 후 '원불교환경연대'가 4년 동안 매주 월요일에 진행해온 '생명 평화 탈핵순례'가 오는 9월24일 200차를 맞는다고 한다.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순례는 자신부터 시작해 가장 근원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종교적 행위다. '평등세계'를 향해 오늘도 순례의 발걸음을 이어가는 모든 분들에게, 뜨거운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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