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저술로 읽는 교사〉

▲ 대종사 〈법설집〉을 지은 박창기 대봉도
소태산대종사는 일제말기인 원기28년(1943) 6월1일 열반에 든다. 원기 원년(1916) 일원상 진리를 대각하고 새 회상을 열어 28년의 제도(濟度)사업을 전개한 때이다. 열반 전에 구세경륜을 〈불교정전〉으로 편찬하여 후래만대에 보감삼도록 하고 있다. 그런만큼 제자들의 대종사 성음법설(聖音法說)을 갈구하게 되었고, 그 수필(受筆)들을 모으는 작업이 다투어 이루어졌다.

열반1주기를 기해서 정리된 수필법설집에 박창기(朴昌基, 1917-1950)대봉도의 〈법설집(法說集)〉이 있다. 그는 모친인 이공주(九陀圓李共珠, 1896-1991)종사를 따라 원기18년(1933) 출가하여 대종사와 은부자(恩父子)결연을 맺고, 전후 11년간을 가까이서 시봉(侍奉)하면서 법설을 받들어 기록한 것이다.

〈법설집〉은 양지(洋紙, 가로 13cm×세로 10cm) 수고본(手稿本) 2권1책으로 총 136쪽이다. 한문에 한글토를 붙였는데, 한 꼭지를 해석하면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도(道)란 길이니 계룡리길(총부근처 마을길)은 유한한 소도요, 황등길(익산-대전간 국도)은 무한한 대도이다. 대도란 뭇사람이 모두 다니니 넓고 또한 크니라. 재래불법과 우리불법을 비교한 즉 재래불법은 초인간적으로 한정된 소도요, 우리불법은 대중화의 대도이다. 과거불법은 무직자(無職者)에 한하지만 우리불법은 직업을 병행하는 고로 이는 대도이다"라 설하고 있다.

1권에는 105편, 2권에는 47편으로, 도합 152편을 실었다. 법설의 상황성을 살리기 위하여 '내가 이와 같음을 듣사오니(如是我聞)'와 여러 곳에 베풀어진 연대를 적고 있는데, 원기22년(1937) 8월부터 원기27년(1942) 1월까지이다. 이를 원기29년(1944) 5월24일부터 6월15일까지 청서(淸書)하고 있다.

서문에서 박창기 대봉도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어느덧 대종사(宗師主) 1주년 기념(忌念)을 당하게 되니 세월의 빠름을 느끼는 동시에 작년 이맘 때에 받은 상심처를 다시금 쓰리고 아프게 한다. 비분통석(悲憤痛惜) 없이 지묵(紙墨)으로 다할 바이랴! 산감신고(酸甘辛苦)의 기구험로(崎嶇險路)를 피와땀으로 돌파하시며, 만고무류(萬古無類)의 위대한 사업의 기초를 세우시고 노력하시다가, 이제는 고요히 피안에 건너시었다. 울어야 옳을까? 뛰어야 옳을까? 무한한 사랑을 받다가 뒤떨어진 유법자(幼法子) 묵산은 다못 정성을 다하여 지나간 날 초록해 두었던 법설을 모아서 뜻이 같은 후진의 일독을 권하는 동시에 이제는 상천(上天)에 소요하시는 대사부 존영전에 고요히 고요히 받들어 명축(冥祝)하옵는 바이다" 이렇게 폐부를 찌르니, 오늘의 〈대종경〉 법설에 어찌 감격하지 않으랴.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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