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3-30 09:29 (월)
기자가 만난 사람/ 박남수 전 천도교 교령
기자가 만난 사람/ 박남수 전 천도교 교령
  • 나세윤
  • 승인 2016.08.19
  • 호수 18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1운동은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다"
▲ 박남수 전 천도교 교령은 후천개벽과 민족종교로 원불교와는 형제지간이라고 말하며 친근감을 표했다.
서울 도심의 가마솥 더위가 길거리 사람들의 왕래를 끊어 놓았다. 대신 시원한 사무실이나 카페에는 이야기꽃이 핀다. 무더위가 한창인 8월 초 종로구에 위치한 수운회관으로 향했다. 천도교 박남수 전 교령(73)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원불교 종법사에 해당하는 교령에서 물러난 지 5개월이 됐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으로 종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으로 보폭을 넓히면서, 종교간 대화와 협력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를 수운회관 사무실에서 만나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회의 추진 상황을 들어봤다.

- 요즘 근황이 궁금하다

지난 3월에 교령직을 놓았는데,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현직에 있는 느낌이다. 교령으로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일과를 보내고 있다. 교회 일이라는 것이 직을 내려놓는다고 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임 후 오히려 더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에게 일이 많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얼마 전에 피서를 다녀왔다. 더위를 피한 것이 아니라, 밀짚모자를 쓰고 일주일 내내 속옷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열심히 농작물을 가꿨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하면서 더위를 잊었다.

- 천도교에 입교는 언제 했는가

내 고향은 경상남도 남해군이다. 남해군은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지방자치단체 중 천도교도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천도교가 성할 때는 남해군민 중 천도교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평양 교도들이 이상적인 궁을촌(남해군)이라 하여 구경 가고 싶어 했던 곳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이 어떤 강연회가 있어서 그곳에 간다고 했다. 귀한 손님이(9월로 기억) 와서 강도회(講道會)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온 분이 묵암 신용구 교령이었다. 해방 이후 유일하게 교령을 다섯 번 지낼 정도로 성자적인 용모를 지닌 분이다. 가정 60만호를 관리했으니 그 포덕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이 갈 것이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고 행한 강도회에서의 말씀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아, 저런 분을 신선이라고 하는 구나' 어린 나이지만, 강도회가 끝날 때까지 가지 않고 앉아서 경청했다. 그 감격으로 그날 천도교에 입교했다.

- 2019년이면 3.1운동이 100주년을 맞는다

일본 식민지에서 3.1운동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현 세태는 3.1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과 민족의 정체성 결여, 민주주의의 뿌리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 핵심에 3.1운동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는 3.1운동에서 비롯됐다. 3.1운동 정신을 계승한 것이 상해임시정부이고, 이후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정으로 갈 것인가, 대한제국으로 갈 것인가 논의할 때 그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 '기미독립선언서의 내용'이다.

- 천도교와 3.1운동은 어떤 관계인가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에서 참여한 사람은 3대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선생을 비롯해 15명이었다. 주도적으로 3.1운동을 기획했고, 교단적으로 3.1운동을 전개했다. 의암 선생을 보좌하는 지도부 핵심 세력인 최린, 권동진, 오세창은 상해 쪽의 독립운동 세력과 일본에서의 유학생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고, 긴밀히 연락을 취해 전 민족적인 3.1운동을 펼쳤다. 천도교는 1919년 당시 300만 교세(의무 실행자 200만명)였다. 전체 인구가 2000만명 정도였으니 교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될 것이다. 기독교는 겨우 20만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 그럼 본격적인 100주년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10년 전부터 준비는 했지만 본격적인 사업은 올해부터다. 3년 전 교령에 취임할 때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 이제 시기적으로 여건이 성숙됐다. 민족 대통합의 정신을 되찾는다는 의미와 종교가 다른 한국인들이 대한 독립을 위해 함께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3.1운동 정신은 통일조국의 미래정신이자 우리가 열어가야 할 방향을 담고 있다.

- 3.1운동 100주년사업은 어떻게 되는가

그동안 3.1운동 기념식은 국가가 진행하는 행사 말고는 천도교·불교·기독교가 공동으로 기념한 일은 없다. 늘 따로따로 논의하고 기념일을 경축했다. 거의 100년 만에 그 위대했던 정신을 찾아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7대 종단이 참여하고 있고, 시민사회 300여개 단체와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의 한인대표들이 100주년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어찌 보면 100년만에 다시 일어나는 민족 대통합운동이라 할 수 있다.

지난 7월14일~18일에는 임시정부 순례단(종교, 시민단체)을 꾸려 상해, 남경, 가흥 등 임시정부가 있었던 곳을 순례했다. 현장의 생생함을 체험했고, 상해 임시정부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를 살펴봤다. 2차례의 포럼과 1차례 특강으로 이뤄져 '민족, 독립, 정신' 등을 새겨보는 시간이 됐다. 앞으로 로드맵은 3.1운동 100주년 홍보, 대한민국 국가관 정립, 국제학술대회, 예술문화활동 전개, 성지순례 및 지역 3.1운동 알기 등을 추진한다.

- 사업 추진을 위해 5년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 우선 국가 예산을 2차례 받아 사업들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는 3.1운동 전 국민 확산운동, 3.1운동 발굴 사업, 세계 네트워크 구축 사업, 문화예술 사업(뮤지컬, 영화 등), 3.1운동 기념관 건립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3.1운동비사〉는 독립운동 했던 선조들이 일본인들에게 재판받았던 기록(1017쪽)이다. 이 자료 등을 참고해서 지역의 3.1운동을 발굴하고 조사하도록 하겠다.

천도교는 일제강점기 때 항쟁, 독립운동 등으로 일본의 핍박을 말도 못하게 받았다.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 정권과 대립하면서 철저히 배척됐고, 건국활동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이런 관계로 3.1운동의 주체가 천도교에서 개신교 중심으로 쓰여 지기 시작했다. 바로잡는 노력이 절실하다. 3.1운동이나 일제강점기 독립자금은 대부분 천도교인들에게서 나왔다.

- 천도교와 원불교와의 관계는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는 천도교를 굉장히 호의적으로 생각했다. 인연으로 따지면 형제지간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천도교인들은 원불교를 형제자매라고 믿고 있다. 대산종사는 종법사 재위 때 큰 행사 때마다 참석했고, 우리 교령님도 수시로 대산종사와 만났다. 우리에게는 후천개벽과 민족종교라는 혈연적 공통점이 있다. 다만 천도교는 157년의 역사 속에 흥망의 굴곡이 가장 심했던 종교였다. 원불교는 아직까지 그 굴곡진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을 잘 마련해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원불교도 그렇지만 천도교의 노령화도 심각한 것 같다

저 출산, 노인인구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젊은이들은 갈수록 종교에 관심이 없다. 종교를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급격히 줄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럴수록 노인공경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을 어떻게 돌보고 모실 것인가를 고민할 때, 자녀 손들이 그것을 보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적인 인물로 성장할 것이다. 사람이 한울이기에 미래사회는 사람 중심의 시대로 가게 돼 있다. 천도교가 부흥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천도교가 침체된 원인은 시대적·상황적인 교리 적용을 못했고, 교리를 몇몇 사람들이 아전인수로 해석해 왔기 때문이다. 또 일반인들에게 포덕(덕을 나누는 것) 한 일이 없고, 인재양성에 소홀했던 측면도 있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밀물 뒤에 썰물이 오는 것처럼, 어둠이 지나가면 밝음이 오는 것처럼, 이제는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다. 천도교가 쇠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기성종교들이 이 시운을 탈 것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기성종교로는 개벽시대를 이끌 수 없고, 세상을 개벽시킬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내 것이 소중한 만큼 이웃종교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종교간 갈등과 반목, 허울뿐인 미사여구 식의 화합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이, 조용히, 일상적으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포교 전술적 이중 태도는 종교인들이 경계해야 할 일이다.

박남수 전 교령은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과 한국종교연합(URIKorea) 상임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