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권 교도/여의도교당
우리가 세상에 와서 살다가 일대사를 끝마치고 고향으로 돌아 갈 때 가져가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무상공덕, 상생의 선연, 청정일념이 그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 공덕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두고 행동을 한다.

그 원칙의 하나는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고, 닦은 바가 크지 않으니 바보처럼 사는 것, 즉 조금 밑지며 사는 것이다. 둘째는 가능한 무조건 베푸는 것이다. 그 베푸는 방법은 정신·육신·물질로 하는 것이다. 셋째는 앉아서 말로 하지 않고 맨발로 뛰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조직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온 몸을 던져 뛰어든다.

그런데 그 무상공덕을 쌓기 위해서는 물질을 많이 베풀어야 하는데 전생에 지은 바가 별로 없어서인지 재물복이 없어 크게 베풀지 못하는 것이 한이다.

공덕을 짓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심공덕이다.
남을 위하고 세상을 구원할 마음을 가지며 널리 대중을 위하여 기도하고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마음으로라도 잘 되라고 빌어주면 그것이 공덕이다.

둘째, 행공덕이다.
자신의 육근 작용으로 덕을 베풀고 자기의 소유로 보시를 행하여 실행으로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재물이 없으면 몸으로 하는 것이다. 그 몸까지 성치 않으면 마음으로라도 빌어주는 것도 공덕이라는 말씀이다.

셋째, 법공덕이다. 대도정법의 혜명을 이어 받아 그 법륜을 굴리며 정신 육신 물질로 도덕회상을 크게 발전시키는 공덕이다. 이 법 공덕이 공덕 중의 으뜸이라고 한다. 이 공덕을 쌓기 위해서는 대도 정법회상에 들어가 공부와 사업에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무상공덕을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나누기 위해 돈을 번다'는 분이 있었다. 영화배우 폴 뉴먼 (Paul Newman : 1925~2008)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폴 뉴먼은 크리스마스 때 자신이 만든 드레싱을 이웃에게 선물하곤 했다. 1980년 크리스마스 때도 뉴먼은 친구인 작가 허츠너와 함께 드레싱을 만들고 있었다.

이웃들에게 선물하고도 남을 만큼의 드레싱을 바라보던 그는 허츠너에게 말한다. "혼자 먹기 아까운데 이 드레싱을 팔면 어떨까?" 깜짝 놀란 허츠너는 뉴먼을 말렸지만 뉴먼은 '나는 단 한 번도 계획을 세운 적이 없는 가장 어리석은 사업가'라며 무작정 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반응은 엄청났고 그들의 어설픈 사업은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100% 무 방부제 천연재료로 샐러드드레싱 시장을 석권하며 스파게티 소스, 팝콘, 레모네이드에 이르기까지 세계시장에 우뚝 선 '뉴먼스 오운'이 탄생한 것이다. 자본금 1만2천 달러에 첫해 수익금만 92만 달러. 돈을 번 뒤 뉴먼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일을 시작한다.

해마다 12월이면 회사의 수익금 전액을 의료 연구와 교육 사업, 환경 운동을 위해 자선단체에 기부한 것이다. 그리고 새해 첫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빈손으로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 1985년 뉴먼은 전 세계 28개국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산골짜기 갱단 캠프'를 만든다. 캠프 이름은 뉴먼이 출연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이끌던 갱단에서 따왔다.

이 캠프는 병마 때문에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매년 '뉴먼스 오운'의 통장은 텅텅 비지만 그들의 마음만은 넘치도록 채워졌다. 아마 이 폴 뉴먼의 무상공덕이 그가 세계적인 대배우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이미 뉴먼은 갔지만 이 세상에 다시 와서라도 그 공덕으로 인해 복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야말로 무상공덕이 아닌가? 나는 폴 뉴먼처럼 유명하지도 또 재력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 대신 몸으로 뛰고 마음으로 빌어주고 일원대도의 혜명을 이어 받아 그 법을 매일매일 온 세계에 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달음이 없어서는 안된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고 나서 말씀하기를 "나의 깨달음은 고행이나 선정에 의해 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을 돌면서 쌓아 놓은 공덕이 세상을 가득 덮을 만하여 그 인연에 의해 이생에서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셨다.

상 없이 공덕을 쌓으면 맑고 밝고 훈훈한 선근을 얻어 악업에 물들지 않는다. 모든 것을 사실과 이치에 맞게 행하는 관계로 공덕이 쌓여 선과를 이루어 마침내 해탈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선업을 짓고 살면 마음에 어둠이 깃들 이유가 없다. 희유한 인연으로 사람으로 태어난 짧은 인생을 좋은 일을 하기도 바쁜데 구태여 악업을 지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수행이란 자기 속에 들어있는 이치에 어긋난 탁한 습성을 제거하고 욕망과 집착과 이기심에 물들지 않고 모든 것을 이치대로 축복하는 맑은 정신을 기르는 것이 아닐까? 실상과 이치에 따라 거짓 없이 살면 악업이 붙지 않으며 맑은 마음을 기르게 된다.

세상은 버려야만 하는 번뇌의 바다가 아니다. 함께 진급으로 나가며 서로 복을 지을 복밭이다. 그리고 인생은 끝없이 되풀이되는 저주의 윤회가 아니라 완성에 이를 축복의 기회인 것이다. 이것이 공덕 행에 의한 진정한 수행인 것이다. 우리는 보통 공덕을 세상을 위해 짓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세상을 위해 좋은 인연을 짓는 것을 공덕행이라 한다.

하지만 그보다 깊은 의미는 공덕 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업을 지운다는 의미가 더 크다. 즉 공덕은 바깥에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서 쌓아 나가는 것이다. 우리 이 무상공덕 행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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