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교무, 철학박사논문

▲ 정현숙 교무
개벽사상(開闢思想)은 새로운 변혁에 대한 민중의 열망으로 19세기에 태동된 한국고유사상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수운 최제우(1824~1864, 동학 교조)를 효시로 해 증산 강일순(1871~1909, 증산계열 신종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1891~1943, 원불교 교조) 등을 주축으로 전개됐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한국 근대의 암울한 사회현상을 배경으로 나타난 개벽사상의 가장 마지막 주자인 원불교 개벽사상의 역사적 전개와 그 특징을 살펴본다.

19세기 중엽, 수운은 종교체험 이후 '동학(東學)'을 개창하고 '다시 개벽'으로 절망에 처한 민중과 희망의 미래를 함께 노래했다. 이어 증산은 1901년부터 9년간 '천지공사를 통한 해원상생개벽'이라는 수운의 동세(動世)개벽에 대한 정세(靖世)개벽으로 민중의 마음을 이끌었다. 그리고 1916년의 깨달음을 얻은 소태산은 불법연구회를 창건하고 '정신개벽'을 중심으로 선지자들의 개벽사상을 이어갔다.

한국 근대기에 출현한 신종교 개벽사상은 공통적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우주적 전환과 세계정세의 변환에 따른 새로운 문명의 도래에 대해 인식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신분차별의 극복과 인권평등을 강조했다. '만민평등사상'의 전 세계적 추세와 함께 개벽사상 또한 인권평등의 시대를 제창했다. 셋째, 개벽세상이 열리는 시간적 기점을 주창자 당대 전후로 보고 있다. 넷째, 한반도를 개벽의 공간적 중심지라 했다. 다섯째, 사회적 역동성으로서의 종교사상과 사회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여섯째, 종교적 회통성으로 민족 고유의 전통신앙부터 유·불·도(儒佛道)와 서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르침을 고루 수용하면서 여기에 독창적 교리, 의례, 교단법 등으로 사상을 체계화시켜나갔다.

원불교는 이러한 개벽사상의 공통특징을 포괄하면서 시대에 따른 개벽사상을 새롭게 전개했다. 소태산은 깨달음을 얻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일원철학(一圓哲學)'이라는 사상체계를 성립하여 초기교단을 이끌었다.

그 뒤를 이어 종단의 대표가 된 정산 송규(1900~1962)는 '삼동윤리(三同倫理)'를 발표해 윤리로서 개벽사상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다음 대산 김대거(1914~1998)는 종교연합(United Religions)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평화운동을 거교적으로 일으켜 평화사상으로 개벽사상을 이어갔다.

현재 원불교는 앞서 실현된 개벽사상의 도약을 위한 준비단계에 있다. 시대를 선도하는 개벽사상이 되기 위해서는 지난 행적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 방안이 필요하다.

창조와 계승으로 한 세기를 이어온 원불교 개벽사상 특징의 도출은 미래향방의 틀을 제공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원불교 개벽사상 특징은 첫째, '정신개벽'이다. 물질개벽시대를 인식하고 정신개벽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둘째, 종교개벽이다. 불교혁신뿐만 아니라 종교관계의 차원변화로 개벽세상의 이상적 관계상을 제시했다. 셋째, 생활개벽이다. 개벽시대는 크고 거창한 변혁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 변혁에 대한 대응은 개개인이 각자의 정신을 개벽하여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서 자신의 변화, 주변의 변화, 이웃의 변화를 이끄는 참 개벽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임을 주장했다. 마지막 특징은 생령본위의 인간개벽이다. 만물에 영(靈)이 있음을 기본으로 하여, 인간중심을 넘어 모든 생령을 본위로 한 새로운 인간으로의 성숙을 함께 이루고자 했다.

원불교 1백년 역사는 한국 근현대 역사의 굴곡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국가에서 한 종단이 한 세기를 이어오고 있는 중심사상을 조명하는 작업은 그 사상의 방향성을 재고하는 데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닌, 그 국가 그리고 국가와 연결된 모든 사회를 비춰보고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엄중한 연구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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