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 장학사업하는 '키다리아저씨'
학생들 봉사동아리로 재능기부 기회 열고
장학사업으로 어려운 청소년 미래희망 일궈

서울지하철 5호선 동쪽 끝, 상일동역에서 만난 그는 18년째 함께해 온 SM5 차량 안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때 EBS 수능 윤리 강사를 역임하고,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인문학〉, 〈EBS 명강사와 함께하는 동서양 고전 100선-대학으로 가는 길〉 등 다수의 저술을 펴낸 그이지만 첫인상은 소박했다. 오히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당당함에 빛을 더했다.

지난해부터 공립 강일고등학교에서 윤리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는 28년차 이진희 교사(법명 여진·강남교당).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그의 책상에는 학교 축제를 막 끝낸 물품들로 가득했다.

창체(창의적 체험활동)부장을 맡아 학교 축제와 동아리를 담당하다 보니, 그의 책상은 고요할 날이 없다. 게다가 책꽂이 위에는 머리핀과 수제 천연비누, 방향제 등 갖가지 물품들로 가득하다. 그가 운영하는 봉사동아리 '사랑과 나눔' 물품들로, 학생들과 함께 만들었다.

"학생들이 동아리활동을 통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거든요. 머리핀은 전국에 있는 보육원으로 보내지고, 수제비누와 방향제 등은 노인복지관에 기증해요.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재능기부' 형식을 빌려 활동하고 있죠."

청소나 심부름으로 끝나는 타력적 봉사를 넘어, 학생들이 재능기부로 나눔을 실천해 보이는 '사랑과 나눔' 동아리활동은 현재 100여 곳이 넘는 보육원과 복지관에 후원 중이다.

하지만 재료비가 만만치 않다. 그렇게 시작한 벼룩시장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사비를 들여 만들었는데 규모가 점점 커지다 보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더라고요. 동아리활동을 지원해 주는 교육청에 사업 신청도 하고, 강남구 자원봉사센터에 '사랑과 나눔' 단체를 등록해 회원들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부족한 부분은 그가 방송한 강의료와 참고서 집필비 등으로 충당한다. 최근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안 쓰는 물품을 후원받아 회원들과 함께 벼룩시장을 열고 있다. 주말 하루 동안 3~4시간씩 팔고 나면 많게는 30만원, 적게는 10만원이 벌린다. 그의 노력에 가족, 동아리 학생들, 강남교당 교도들, 원불교 교사회 회원들까지 손을 보탠다.

하지만 벼룩시장을 열며 아쉬운 점도 있다. 다문화가정여성이나 탈북인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해 좋은 물건을 제공해 주고 싶은데, 항상 '눈 밝은' 이들이 먼저 골라가니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그래서 그의 꿈은 '아름다운 가게'처럼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 되는 상설매장을 여는 것이다.

그 일만으로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건만, 그에게는 남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장학사업이 하나 더 있다. 1년이면 천 만 원이 족히 되는 장학금은 강남권을 제외한 그가 재직했던 학교나 모교 등에 각 120만원씩 전달된다. 그가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꾸준히 장학사업을 벌이게 된 데에는 28년 전 교생실습에서 만난 아이와의 인연이었다. 서울대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초등학교 교생실습을 하며 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공동 화장실에, 부엌이 흙바닥일 정도로 낙후된 마을에서 사는 그 아이가 저를 집으로 서너 차례 초대했어요. 갈 때마다 마음이 아파 그 아이를 돕기 시작한 것이 현재 20년째 장학사업을 하고 있죠." 장학회 이름은 청죽장학회다.

"제 뜻을 알고 첫 장학금을 친정어머니(이청죽, 법명 소원, 강남교당)가 후원해 줬거든요. 그래서 어머니 이름을 땄죠. 지금까지 70~80명의 아이들을 후원했으니, 그 중에는 의대에 들어간 친구도 있고, 건축학을 전공한 친구도 있어요. 어느 날 저에게 편지가 한 통 왔어요. 저보고 '키다리아저씨' 같다는 내용이었죠. 맞아요. 저의 원칙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는 장학금을 주지 않죠."

간혹 그의 이런 장학활동을 돈과 환경적 배경에 빗대어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깜짝 놀란다.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그의 집 거실과 딸 방에는 벼룩시장에 내다팔 물품들로 가득하고, 결혼할 때 사온 '금성' 세탁기는 지난해 겨우 작별했다. 18년째 발이 돼 준 승용차며, 그가 걸친 옷가지, 액세서리들은 모두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물품들이다. 물질에 현혹되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이다.

인과의 이치를 알면 행동이든 물건이든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다는 그가 요즘에는 교당 일에도 열성적이다. 시부모(조태일·김정명, 송천교당)의 권유로 결혼과 동시에 입교는 했지만 그동안 교도며 맏며느리 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그가 7년 전, 효도하는 마음으로 교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남편, 친정어머니, 동생네 가족까지 모두 교당에 다니게 됐다.

최근에는 서울교구교사회 회장을 맡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일 날이 없을 정도다. 그러면서 잘 홍보해 달라며 하는 말. "동서양 고전에 대해 강의를 원하는 곳이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교단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재능기부하고 싶어요." 누가 그를 '키다리아저씨'라 부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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