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수저 오래 전에 이장에게 빼앗겼는데 / 이번엔 옆집 부자가 무쇠솥을 빼앗아갔네 / 닳아빠진 무명이불 겨우 한 채뿐이라 / 부부유별 따지는 것도 이 집에는 안 어울린다 / 어린놈 해진 옷은 어깨까지 다 나왔고 / 날 때부터 바지 버선은 걸쳐 보지도 못했네 / 큰 놈은 다섯 살 때부터 기병대로 이름이 올랐고 / 세 살 난 작은 놈도 군인의 명부에 들어있어 / 두 아들 군포로 오백 푼을 물고 나니 / 빨리 죽기나 바랄 뿐이지 옷을 다져 무엇하리

'암행어사가 되어 적성촌에서(奉旨廉察到積城村舍作)'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조선 후기의 문신)

위 시는 다산 정약용이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연천 지방의 적성촌을 둘러보고 그 빈궁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의 중간부분이다.

다산은 시인이 바람이나 달을 읊는 것을 비판하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는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위 시는 당시 가난한 정경이 생생하게 나타나 그 참상이 눈물겹다. 물론 가난은 그 당시 삼정의 문란으로 탐욕스러워진 관리들의 부정과 착취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이처럼 부패한 관리들을 다산이 단호하게 처단한 사실이 다산의 암행어사 장계에 남아있지만, 갑자기 정조 임금이 죽은 뒤에 다산은 천주교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당하면서 '자신을 비웃으며(自笑)'라는 시를 썼다.

의와 인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며 / 젊은 시절에 도를 구하려 다녔다 / 망령되게 세상일을 모두 알고자 하여 / 이 세상의 책들을 다 읽으려 했다 / 맑은 날엔 활에 다친 새의 신세요 / 남은 목숨이 그물에 걸린 고기로다 / 천년 후에 나를 아는 자 있으려는지 / 마음을 세운 일은 잘못이 아니고 재주가 부족한 탓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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