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광 교무/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폭염(暴炎)은 매우 심한 더위를 뜻하는 한자어이다. 낮 최고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경우가 2일 정도 지속될 때 폭염주의보를 내리고, 낮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경우가 2일 이상 지속될 때에는 폭염경보를 내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염주의보에 이어 폭염경보까지 발령되었고 이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안전처'에서 발송하는 긴급재난문자가 빈번하게 울려댔다. 대집트(대구와 이집트), 전프리카(전주와 아프리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정말 무섭게 뜨거웠다. 이러한 날씨에 몸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불쾌지수가 최고조인 이때에 가만히 있을 리 없는 마음은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하루하루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이 짜증으로 다가와 늘 미간을 찌푸리며 다니게 되었고, 만사가 다 귀찮아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했다.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는데도 시작할 생각도 안 하고, 배는 고팠지만 밥을 차리는 것이 귀찮고 입맛이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이렇게 공포스러운 무더위를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비가 살짝 내리더니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기승을 부렸던 더위가 신기하게도 한 번에 싹 사라졌다. 그 무더위가 사라지더니 햇볕도 심하게 따갑지 않고, 바람도 선선해지고, 심지어 아침저녁에는 쌀쌀해지기까지 했다. 내 얼굴에 선선한 바람이 스치는 그 순간 '이렇게 하루아침에 물러갈 더위였으면서 그 난리를 치면서까지 전 국민을 힘들게 했어야만 했냐'며 더위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 하늘을 찔렀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날씨가 참 신기하기도 했지만 더 신기한 것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내 마음과 행동이었다. 무더위에 허덕일 때는 그 고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힘들어 했으면서 날씨가 조금 선선해졌다고 밥맛이 살아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밀린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처리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선선한 가을이 오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날씨의 변화로도 쉽게 변하는 마음이라는 것도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알고도 진리를 망각하며 날씨라는 경계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내 모습이 어리석어 보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천지의 일기도 어느 때에는 명랑하고 어느 때에는 음울한 것과 같이, 사람의 정신 기운도 어느 때에는 상쾌하고 어느 때에는 침울하며, 주위의 경계도 어느 때에는 순하고 어느 때에는 거슬리나니, 이것도 또한 인과의 이치에 따른 자연의 변화라,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 변화를 겪을 때에 수양의 마음이 여여하여 천지와 같이 심상하나, 이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 변화에 마음까지 따라 흔들려서 기쁘고 슬픈 데와 괴롭고 즐거운 데에 매양 중도를 잡지 못하므로 고해가 한이 없나니라." (〈대종경〉 인과품 6장)고 큰 법문을 말씀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글자로 흘려보내고 말았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폭염이 나에게 주고 간 이 공부거리로 법문을 글자로만 머리에 담아두는 것이 아닌 몸과 마음에 깊이 새길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선물해준 것 같아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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