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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시련 두 번의 성공, '마을과 이웃' 탄생
두 번의 시련 두 번의 성공, '마을과 이웃' 탄생
  • 강법진 기자
  • 승인 2016.09.09
  • 호수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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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학교, 느티나무축제는 마을공동체의 뿌리
골목마다 아이들 웃음소리에 마을이 살아나다
▲ 인천 청학동 '마을과 이웃'은 자력으로 이룬 공동체마을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마을 어르신, 아이들이 느티나무에 모여 마을청소를 한다. 맨 왼쪽이 윤종만 대표다.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도심에서, 시골에서 때로는 고향을 찾아 이웃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 추석을 앞두고 18년째 마을공동체를 이어가고 있는 인천 청학동 '마을과 이웃'을 찾았다.

청학동 사람들은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마을 청소를 한다. 처음에는 마을공동체 운영위원을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지금은 아이들, 어르신 할 것 없이 다함께 빗자루와 집게, 종량제봉투를 들고 손을 보태고 있다. 수령이 535년이 된 느티나무 주변에서 시작해 마을 입구까지 이들이 한 번 지나가면 동네가 말끔해진다.

다른 마을공동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러한 풍경은 청학동 사람들이 마을에 불어닥친 두 번의 시련을 극복해 내면서 얻은 협동심의 발로다. 마을공동체 대표를 맡고 있는 윤종만(57)씨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위기는 기회, 주민들의 일심합력 승리

IMF경제위기가 전국을 강타했던 1998년, 그해 10월 청학동에 토지구획정리 바람이 불었다. 그 당시 49.5㎡ 연립주택과 빌라 가격이 2300만원이었는데 감보율 적용으로 주민들은 1500만원의 개발부담금을 안게 됐다. 대다수가 빈곤층 서민들인 청학동 사람들은 부당한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곧바로 '청학동주민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당시 나이 마흔인 윤종만씨가 대표로 선출됐고, 그는 주민들과 함께 1년2개월간 긴긴 싸움을 벌였다. 윤 대표는 "당장에 주거권과 재산권이 위협을 받는데 주민들이 뭉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잘했다고 여기는 건 투쟁 방식이다"고 말했다. 당시 주민들이 인천시청 앞 광장에 모여 택견으로 시위를 했다. 이마에 빨간 띠를 매고 '이크, 에크!'를 외치며 과도한 개발부담금의 부당성을 알렸다.

뿐만 아니라 가두행진을 하며 지역주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하고, 토지구획정리법에 보장된 주민들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 끊임없이 외쳤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주민들은 협동심을 기르고 마을공동체라는 의식을 조금씩 알아갔다. 감면혜택은 형편이 가장 어려운 사람부터 우선순위로 주어졌다. 이에 대해 윤 대표는 "토지를 가진 이들은 공출을 하더라도 재건축으로 재산을 늘릴 수 있지만 소형주택에 사는 이들은 개발이익으로부터 소외되기 쉽다"며 이를 이해하고 배려해준 주민들에게 감사해 했다. 결국 승리의 원동력은 '연대의 힘'이었다. 함께 싸워줬고, 조금씩 양보했기에 결코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투쟁을 당당히 이겨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부당감보율 철회 운동이 끝나갈 즈음, 철도청(현 코레일)이 수인선을 건설하는데 청학 구간(연수~송도)을 지상으로 건설하겠다는 설계안을 발표했다. 마을 입구에 철도를 놓겠다는 얘기다. 주민들은 소음과 분진 등 환경피해를 호소하며 수인선 지하화를 요구했다. 무려 4년6개월에 긴 싸움이었지만 한 번의 성공 경험은 주민들의 결속을 더욱 다지게 했다. 결과적으로 주민의 뜻을 관철시키고 수인선 지하화 설치로 인해 공용 부지를 얻게 된 것. 현재 이곳은 마을 공용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고, 향후 복합문화센터를 설립해 주민들의 문화생활과 복지를 향상시켜 갈 예정이다.

청학동 사람들은 두 번의 굵직한 현안을 해결하면서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고 공동체마을을 만들어갔다.

마을공동체학교,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곳

윤 대표는 "마을운동을 하다 보니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어려운 이웃들이 있었다"며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방과 후 혼자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마을공동체 집행부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나눔의 교실' 설립을 제안했고 주민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후 '나눔의 교실'은 청학동 마을공동체가 18년째 이어올 수 있는 뿌리가 돼 줬다.

윤 대표는 그 설립 배경에 대해 "2001년 1월 토지구획정리사업이 마무리되면서 마을에 자투리 땅(체비지)이 생겼다. 이곳에 건물을 짓지 않으면 개발부담금을 더 적게 낼 수 있었지만 주민들은 아이들이 먼저라고 생각했다"며 마을의 미담을 소개했다. 나눔의 교실이 생기자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냉장고, 컴퓨터, 책 등을 마련해주고, 폐지나 고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꼬깃꼬깃한 지폐를 가져와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아이들의 사랑이 지대했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윤 대표는 마을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톨스토이가 '당신이 우주를 사랑하고자 한다면 먼저, 당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사랑하라'고 한 말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고 한다.

나눔의 교실은 2003년 '청학동 마을공동체학교'로 정식 개교하고 현재는 연수구청으로부터 '청학동 방과후교실'로 지정받아 40여명의 아동이 교육을 받고 있다. 상근 보육교사 2명, 조리사 1명이지만 20여명의 자원활동가가 뒤를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다.

취재를 갔을 때 저학년 아이들은 한자공부를 하고, 고학년 아이들은 오카리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외에도 사물놀이, 탈춤,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 등을 배워 매년 발표회를 갖는다. 윤 대표는 더 많은 아이들을 돌볼 수 없음에 안타까울 뿐이라 했다.
▲ 인천 청학동 공동체마을 '마을과 이웃'은 마을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달은 뒤 나눔교실로 아이들을 키운다.
10월엔 느티나무 축제에 놀러오세요

청학동 마을공동체 '마을과 이웃'에는 매년 10월 축제가 열린다. 축제장은 올해로 수령 535년을 맞은 느티나무 아래 야외무대다. 느티나무 천사들의 축제로 만들고자 한 염원에 따라 매년 마을 안에서 1004명, 마을 밖에서 1004명의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게 목표다.

축제의 시작은 건넛마을 물푸렛골 향나무 보호수 앞에서 '나눔의 집' 어린이 풍물단이 길놀이로 알린다. 그 행렬을 따라 집집마다 모여든 주민들은 음식을 나누고 글짓기와 사생대회, 마을 알기 OX퀴즈, 전통놀이 한마당을 즐긴다. 축제의 절정은 전통혼례 재현이다. 지금껏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살아온 부부도 이날 전통혼례로 소원을 풀기도 한다.

물론 축제는 주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마련한 비용으로 치러진다. 때문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축제의 주인공이 되고 다함께 즐길 수 있다. 이외에는 '마을과 이웃'은 골목길 시낭송회, 클래식 음악회, 합창단 공연 등을 여는 문화마을로도 유명하다.

마을공동체 설립 20년을 앞두고 있는 청학동 '마을과 이웃' 윤 대표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다. 마을 독거노인들에 대한 장례문화와 마을의 산 역사인 어르신들의 자서전 발간이다. 그리고 마을에서 보호 중인 외국인묘지에 대한 관리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한다.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보며 작별 인사를 하는데 대종사의 사요(자력양성·지자본위·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정신이 마을공동체 안에 담겨 있음을 알았다. 주민의 힘으로 마을을 이루고 서로 협력하여 아이들의 언덕이 되어주는 이들의 헌신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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