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 / 벤쿠버교당
농사를 잘 짓는 농부는 잡초를 성실히 제거하지만, 좋은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 또한 때에 맞게 잘 합니다. 우리의 수행도 마찬가지죠. 자신의 허물을 고치거나 악업을 짓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본래 마음인 성품을 잘 수호하고 발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솔성(率性)' 이라고 하죠. 성품을 잘 거느리고 발현하는 것 말입니다. 원불교에는 자신의 성품을 직접 잘 수호하고 발현하는 자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조항들이 있죠. 바로 '솔성요론(率性要論)' 16조항입니다.

그 중 첫 조항에는 종교를 믿을 때의 지침이 제시되어 있죠.

'1조.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 2조. 열 사람의 법을 응하여 제일 좋은 법을 믿을 것이요.' 법, 그러니까 종교의 가르침을 택하여 믿을 때에는 '열 사람의 법을 응하여 제일 좋은 법을 믿어야' 합니다. 좋은 가르침이라고 세상에 나와 있는 많은 법들 가운데 때로는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때로는 신비체험 등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경우도 있고, 기복적인 믿음으로만 그칠 수도 있으며, 일반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종교에만 몰입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꼼꼼히 비교하고 따져보고 사죠. 그와 마찬가지로, 종교도 어떤 인연에 끌려 맹목적인 믿음을 갖지 말고, 이 종교가 진리적이고 사실적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그 가르침이 오랜 세월 사람들에 의해 검증이 되고, 그 법을 믿음으로써 믿는 사람이 스스로 건실한 삶을 살고 널리 대중에게도 유익을 주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거죠.

그래서 진리에 근거하고, 대중의 검증 과정을 거쳤으며, 스스로의 삶을 빛낼 수 있도록 사실적이고 대중에게도 널리 유익을 주는 종교적 가르침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종교는 믿음의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 번 믿음을 발하여 믿기 시작하면 헤어나기가 어렵죠.

자칫 잘못된 가르침을 믿고 따르게 되면 이생에서 뿐 아니라 영생을 통하여 잘못된 길을 걸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는 정말 주의할 일입니다.

그렇게 어떤 종교에 믿음을 발하게 되면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어야' 합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주로 사람에 의해 배우고 가르치게 되죠. 법이 좋아 종교생활을 시작했다가도 점점 사람 본위로 친분에 끌리고 익숙해지면서 차츰 법은 멀어지고 인간관계에 비중이 더 커지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종교 구성원간의 갈등이 시작되죠.

성직자나 신도, 교도들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시비와 갈등이 발생합니다. 때로는 그러한 인간관계 때문에 법과의 인연이 끊어지기도 하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생활을 할 때에는 '사람'이 아니라 '법'이 중심이 되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죠.

교무님이나 교도님의 잘못이 보이고 마음에 불만과 불평이 생긴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이 곳에 뭐하러 왔나?' 그렇게 마음을 챙기고 돌리고 바르게 지켜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삶 속에서의 사실적이고 실질적인 공부의 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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