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효정 교도 / 서울교당
최근 대두되는 또 하나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명절증후군'이다. 명절을 보내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명절증후군은 극심한 부담감과 피로감으로 흔히 가족 사이의 크나큰 갈등요소가 되곤 한다.

명절이라 하면 오랜만에 만난 온 가족들이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며, 정성껏 만든 음식들을 나눠먹는 시간들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생각이나 그림처럼 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우선 자주 왕래하지 않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면 의견들이 충돌하기 쉽다. 부모님 부양 문제, 가족 간 재산 문제, 제사, 가사 노동의 분담, 자녀 양육, 취업 및 출산 등 서로에게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갈등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음식 장만 및 뒤처리로 받는 육체적 피로와 스트레스, 남녀, 형제간 노동 불평등 등을 토로하기도 하고, 서로 비교하거나 참견하는 모습에 상처받는 일도 허다하다. 행복하고 은혜로워야 할 명절이 갈등과 경계들로 얼룩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명절증후군'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족구성원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고, 가족이란 '혈연공동체'가 더욱 따스하고 친밀해질 수 있다면 그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이다. 진정 가정이 편안해야 살 만한 세상이 되며, 밖으로도 낙원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서울교당에서 진행한 이번 추석합동향례에는 33가정, 160여 명이 참석했다. 추석이란 명절에 자신의 가정뿐만 아니라 다른 가정과 함께 기념제를 올리니, 타 가정의 역사를 배울 수 있어 좋고, 마음이 풍성해진다. 간결하면서도 모자람없는 의식과 교무님의 배려 넘치는 설법도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인연들과 만나고 각자 다른 종교인들도 함께 어우러져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성대한 합동향례였다.

청정일념을 챙기게 하는 좌종과 목탁소리, 영혼을 일깨우는 축원문과 법문으로 정갈한 원불교 예법 속에 간절함이 어우러졌다. 엄숙하고도 경건한 향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제주들의 마음에는 깊은 위로와 감사로 가득찼다. 명절이 이처럼 다시 기다려지는 연례의식으로 자리하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의식을 통한 진정한 교화가 아닐까.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11년(1926) 당시 예법이 너무 번거해 생활에 구속을 주고 공연한 허례허식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여 출생으로부터 성년, 혼인, 상장, 제사 등을 총괄하는 신정의례를 발표했다. 이는 원불교만의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사회 개혁적인 혁신예법이었다. 또한 재비를 공익사업으로 환원시킨 것은 미래시대의 종교임을 보여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 행보였다.

우리는 이제 원불교 의식교화의 현주소를 냉철히 살펴봐야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의식교화의 한계는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진리적 보편성과 간편함을 겸비한 원불교 예법이 현장교화의 지속가능한 핵심콘텐츠로 자리해야 한다. 교당에 영모전을 설치하고 개별 위패를 모시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면서, 천도재와 영가의 사후관리 등 의식교화가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본인은 이번 추석합동향례를 통해 원불교 의식교화의 새로운 교화로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희망을 보았다. 교도들 가정은 물론 종교는 다르지만 천도재를 모신 가족들과 비종교인들까지도 함께 교당에 모이는 귀한 교화의 기회일 뿐 아니라, 도문에 함께하는 인연을 맺는 복된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합동향례를 통한 의식교화는 해마다 천도재 및 제사를 통해 제주들을 정성스럽고 세밀하게 관리하는 교무들의 배려가 바탕해있다. 우리의 수준높은 의식과 이러한 인정미, 인간미가 조화를 이뤄 나타나는 교화다. 3대, 4대가 어우러져 합동향례를 모시고, 이를 사축이재나 법회출석으로 이어지게 하는 교화의 새로운 희망. 이를 위해 전 교도가 함께 교당에서 합동향례를 올리는 것을 권장해본다.

이를 통해 교당이 대(代)를 이어 보은과 추원보본의 가치가 실현되는 곳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보며, 이를 '효심교화(孝心敎化)'라 지칭해 본다.

그렇기에 체계적이고 정성스런 명절합동향례는 의식교화의 새바람으로, 현장교화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나아가 '명절증후군'이란 혈연공동체의 불화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도 원천적으로 해결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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