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공부가 잘 되지 않아 심각한 고민에 빠진 청년이 있었다. 절필(絶筆)까지 생각할 정도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는 비 오는 어느날 비참한 기분을 가라앉히려 우산을 쓰고 산책하다가 개울가에서 버드나무 이파리를 잡으려고 수차례 뛰기를 반복하는 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무엇 때문에 되지도 않는 짓에 그리도 애를 쓰는지 그 모습이 처량해 더 이상 보기 싫어 자리를 떠나려던 찰나, 개구리는 마침내 이파리를 간신히 부여잡는다.

그는 망연자실한 채 버드나무 밑에 한참 서있었고,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작았는지 깨닫게 됐다. 그 길로 다시 돌아가 필사적으로 서예연습에 매달려 마침내 일본 제일의 서예가가 됐다.

이는 후지와라 유키나리(藤原行成), 후지와라 스케마사(藤原佐理)와 더불어 헤이안(平安)시대 3대 서예가로 꼽히는 오노도후(小野道風, 894~967) 이야기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서예가로 이름 높은 양사언(梁士彦, 1517~1584).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란 그의 유명한 시조도 오노도후의 깨달음과 많이 닮았다.

당처(當處)에 빌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일 성질을 따라 알맞는 기한으로 공들여야 성공한다는 불공법(佛供法). 하지만 어떤 노인 부부가 며느리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못해 부처님께 불공이라도 올려보려는 그 마음이 없었다면 소태산이 그들에게 불공법을 알려주었을까.

서예공부를 잘 하고 싶었던 청년의 마음도, 태산을 넘어서려는 선비의 마음도, 애초부터 없었다면 개구리의 노력이나 하늘의 높음이 보이지 않았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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