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꺼지지 않는 불, 영화 판도라 포스터.
▲ 김신우 교도/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장
"사방이 족쇄다"

핵발전소 재난 영화 '판도라', 상영 전부터 극장가의 화제였다. 영화 초반의 이 대사가 아수라장의 함정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주인공 재혁은 핵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태어나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일한다. 엄마와 형수는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상으로 식당을 한다. 아버지와 형이 발전소에서 일하다가 피폭돼 죽었고 그 안에서 일을 한다는 게 무서워 곧 그만두고 원양어선을 탈 심산이었다. 그런데 가족과 애인은 물론 조카마저 애원하며 붙잡는 장면에 튀어나온 대사이다.

요즘 이 영화가 절찬 상영 중인데 많은 이들이 너무도 현실 같다고 놀라워한다. 하기야 현실 같은 영화가 이뿐일까 마는, 감독은 현실을 90% 담았다고 얘기했다. 실제 지명이나 풍경이나 한심한 정치 상황들이 낯익어 특히 부산 울산 쪽 관객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내진설계를 했다는데 왜 문제가 생깁니까?"

세월호 침몰로 많은 이들이 죽었는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처럼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소리를 했던 청와대 박씨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놀랍게도 이 소리는 낙하산으로 부임해온 발전소장이 하는 말이다. 핵발전소는 24시간 정격출력에 맞춰 18개월 가동하고 1~2개월 동안 점검과 정비를 한다. 일본보다 가동주기는 5개월이나 길고 정비는 보통 1개월 정도나 짧다. 가혹하게 일을 더 시키고 더 짧은 시기에 리셋을 완료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가동율을 홍보한다. 근데 이게 정말 자랑스러운 것일까.

90년대 후반에는 "세계 최고의 가동율에 세계 최저의 고장율"이라고 선전했는데 요즘은 고장율 자랑을 뺀 듯하다. '판도라'에서 냉각수 배관이 망가져 핵연료가 녹아내리게 생긴 상황에서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배관만 해도 100킬로미터가 넘고 케이블만 해도 천7백킬로미터가 넘는데 두 달 동안 정비를 끝내라는 짧은 공정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다고 이전 소장이 부르짖듯 답한다.

고리1호기는 설계수명을 넘기고 39년째 가동 중이고 월성1호기도 34년째 가동 중이다. 고리1호기는 내년 6월이면 억지로 10년 연장한 가동도 멈추게 된다. 반년 동안 부디 안녕을 빈다. 영화는 이 너덜너덜 구닥다리 원자로가 규모 6.1 지진을 견디지 못하고 큰 탈을 일으킨다. 영화는 1년 전에 완성했지만 곡절이 많아 상영이 지연되는 동안 9월12일 경주에서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규모 6.1 지진은 5.8 지진보다 2배 반 에너지가 크다. 경주 사는 친구 어머니는 쾅하는 소리와 큰 흔들림에 북한에서 핵폭탄을 터뜨렸나보다 직감하고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고 한다. 다른 한 지인은 5.1 지진도 무서웠지만 5.8 지진에는 거실의 대형 유리가 그대로 쏟아져 내릴 듯한 공포에 핵발전소에서 몇 킬로 더 먼 곳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몇 킬로미터 거리가 큰 사고 발생할 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최소한 원자로 반경 30㎞ 안에 살고 싶지는 않는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정말 내진설계를 하면 그만큼 안전할까. 단일 건물이라면 몰라도 핵발전소에서는 어림없는 이론이라는 걸 지난달 방한해 들려준 히로세 다카시 강연에서 배웠다. 흔들림이 중력가속도를 넘을 땐 아무리 튼튼하게 세운 건조물이라도 허공에 붕 떠버려 내진성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것도 배웠다. 핵발전소 바로 아래에서 '직하지진'이라도 발생하면 지반자체가 꺼져버리고, P파와 S파가 거의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지진계가 감지해 핵분열을 멈출 제어봉을 떨어뜨릴 틈조차 없고, 낙차라도 발생해 건물이 기울면 원자로가 직격 당한다는 설명에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또 핵발전소에서 내진 설계라고 말하는 건 원자로 건물만의 기준이다. 문제는 원자로에 문제가 없게 하려면 터빈동을 비롯해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없어야만 성립하는 얘기다. 무수히 뻗어 있는 배관은 높은 기압과 높은 온도의 물 흐름에 두께가 얇아지고 있고 진동까지 견뎌야 한다. 발전소가 오래될수록 더 무서운 이유다. 여차할 때 배관에 구멍이라도 나면 뻗치는 물줄기는 총알 같은 위력으로 다른 배관을 망가뜨린다. 터빈실에서 작업하다가 이 고온고압의 물줄기에 사망하는 사고도 실재한다.
▲ 영화 판도라의 실제 모델인 부산 고리1호기. 내년 폐쇄까지 부디 사고 없기를 기도할 뿐이다.
"이제야 궁금합니까"

청와대 인의 장벽을 뚫고 대통령 손까지 어렵게 들여보낸 너무 낡은 원자로의 발전소장 보고서, 이것도 노회한 총리의 경제 우선 논리에 무시당하고 만다. 게다가 이 보고서 건으로 좌천당한 발전소장은 대형 지진에 발전소가 걱정되어 되돌아갔다. 더 이상 소장이 아니라는 모독에도 사고 수습을 직접 지휘하다가 드디어 대통령과 소통하게 되었을 때, 발전소장이 대통령에게 뱉는 원성이다. 나는 이제야 궁금하냐는 이 대사를 핵사고를 간접 경험하는 관객과 세상 모든 이에게 던진다. 이 세상에서 원자로 주변에 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고 세상에 가장 큰 원자로를 세운 나라가 한국이다. 무섭다고 눈 감고 귀 막지 말아야할 현실이다.

영화는 엄청난 핵사고를 다루면서 참 따뜻하게 연출했다. 대책 없는 사고 전개에 넋을 잃은 대통령이 제정신을 차리고 국민 앞에 실상을 제대로 터놓고 도움을 구한다. 사람은 넘쳐서 나 죽고 너(가족) 살리겠다고 이미 고선량의 방사선에 쓰러졌던 '비정규직' 기술자들이 다시 일어나 사지로 줄서서 들어간다. 방사능 비도 내리지 않고, 후쿠시마 피난민촌에 가서 느낀 을씨년스러움과는 딴판으로 영화 속 피난민촌 풍경은 너무나 활기차고, 애인을 찾으러 방호복도 입지 않고 폭발한 원자로 코앞까지 갔던 여주인공도 너무나 멀쩡하다. '거사' 전 영웅이 된 주인공이 무섭다고 엉엉 우는 장면 정도가 보통의 인간을 그렸다. 재난영화인지 공포영화인지 헷갈릴 정도의 현장효과음에도 이 비현실적인 따뜻함조차 없었다면 도중에 나가버린 사람이 많았으리라.
▲ 영화 판도라는 실제 원전사고로 벌어질 현실보다 훨씬 안전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너무 늦었습니다"

배관이 망가져 냉각수 공급이 불가능해지자 가스불 위 물 없는 냄비처럼 핵연료가 달궈진다. 한계에 달한 핵연료가 기어이 녹으면서 발생시킨 수소가 넘쳐나서 원자로 돔 콘크리트가 폭발한다. 우여곡절 끝에 멜트타운의 급속 진행을 막는 처치를 하고 나니 다음엔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바닥이 구멍나 냉각수가 빠져나간다. 발전소 사람들 뿐 아니라 청와대도 패닉에 빠지고 은폐한 사고마저 천하에 드러나버려 수많은 사람이 공항과 항구로 몰려가 국외탈출을 시도한다.

영화에서는 몇 백 명의 희생으로 오천만을 살게 하고, 신화에서는 판도라 뚜껑에 희망을 남겼다지만, 핵발전소 가동에 비례해 십만 년을 차폐격리해야 하는 폐핵연료가 쏟아지는데 세상에 희망이 있는지 무섭다. 월성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죽기 전에 살 곳 찾자"는 구호를 걸고 2년 전부터 연좌농성 중이다. 월성핵발전소 준공식 때 어깨춤을 췄던 어른들이고, 나라가 하는 일에 뭔 참견을 하겠냐는 주민들이라 여러 어려움에도 참아왔지만, 경주 시내 주민들과 달리 자기 마을 주민 모두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면서 인내가 한계에 달한 것이다.

지난 20일 세상에서 가장 큰 신고리3호기를 상업가동했다. 고리1호기 출력 2배 보다 훨씬 더 크게, 그것도 고리1호기 설계수명의 2배인 60년짜리다. 지구가 요동치고 있다. 지진이 재채기처럼 참을 수 없어 땅을 뒤흔들 때 핵발전소는 단층을 비켜서 있을까. 사고 나면 '판도라'장면 보다 체르노빌 보다 후쿠시마 보다 몇 배 몇 십 배 더 큰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감당할 수 있을까? 방사능으로 '사방이 족쇄'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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