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광 교무/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새해가 되어 원불교 익산성지를 찾았다. 경산종법사께 신년 하례도 올리고 새해의 작은 소망과 다짐을 올리기 위해 소태산 대종사성탑, 정산종사성탑, 대산종사성탑을 차례로 참배했다. 새해 첫날이라서 그런지 새벽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성탑참배를 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 사이에 서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상쾌한 새벽공기를 따라 익산성지를 거니는 중 저 멀리 일원상이 눈에 띄었다.

일원상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 중 "소태산 대종사가 홀연히 그려준 저 일원상을 누가 받아서 원불교 전 재가출가 교도들의 신앙의 대상으로,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게 됐을까. 지금 나는 저 일원상을 어떻게 모시고 살고 있나"하는 생각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5년 8월에 휴양처를 물색하기 위해 김제 금산사에 갔는데 그곳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거처 하던 별채 문미에 일원상을 그린 바 있었다. 이것은 장차 새 교법의 종지(宗旨)인 일원상을 그림으로 그려 보인 첫 구상의 표현이다. 그 후 원기20년 4월에 익산 총부 대각전이 준공되고, 그 정면 불단에 심불일원상(心佛一圓相)이 정식으로 봉안됐다. 대종사 대각 직후 일원대도의 제일성을 발하고, 원기(圓機)·일원(一圓) 등의 어귀 사용과 함께 일원상을 그린 바도 있었으며, 교법을 제정하실 때, 사은 곧 일원(四恩卽一圓)의 신앙법을 구상해 왔었으나, 이에 이르러 비로소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확정 시행한 것이다.

이렇게 일원상은 신앙의 대상으로 수행의 표본으로 그리고 교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이 일원상을 "과연 나는 어떻게 모시며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저 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만 사용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반성도 해보며 원불교 2세기를 시작하는 이때에 내가 대종사와 역대 스승님들에게 효하는 것은 바로 일원상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한 때는 일원상에 도금을 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너무 성스럽게 생각해 일원상을 남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일원상의 주인이 되기엔 너무 부담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소태산 대종사는 내가 이렇게 부담스러워 하라며 그저 문미에 일원상을 그려준 것이 아니라 참 일원을 알려주기 위한 한 표본으로 그려준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킴에 손가락이 참 달은 아닌 것과 같이 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저 표본의 일원상으로 인하여 참 일원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며, 일원의 참된 성품을 지키고, 일원의 원만한 마음을 실행하여야 일원상의 진리와 우리의 생활이 완전히 합치된다. 일원상을 대할 때마다 견성 성불하는 화두를 삼고, 일상생활에 일원상과 같이 원만하게 수행하여 나아가는 표본을 삼을 것이며, 이 우주 만유 전체가 죄복을 직접 내려주는 사실적 권능이 있는 것을 알아서 진리적으로 믿어 나아가는 대상으로 삼으라"고 일원상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말씀했다.

새해 첫날 익산성지의 새벽공기를 따라 일원상의 주인 되기를 다짐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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