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육역사가 100년이 넘는 유럽국가들은 AI 등의 파동을 겪고 나서 사육방식을 완전히 전환했다.
가금류 3천만 마리 살처분, 역대 최악의 축산 재앙
동물 본성 거스른 생산성 위주 밀집 사육 단절해야
고도비만으로 살 찌워 33일 만에 출하하는 축산 시스템 개선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AI 최초 의심신고 이후 52일째인 이날 전국적으로 살처분된 가금류 수는 총 3천54만 마리로 집계됐다. 이번 AI는 역대 최악이었던 2014년(1천400여만 마리)을 넘어서 최단기간 내 최악의 피해를 기록하며 '축산재앙'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추산한 살처분 보상금 소요액만 현재까지 2천300억 원을 웃돈다. 여기에 농가 생계안정 자금 등 직접적인 비용을 비롯해 육류·육가공업, 음식업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간접적인 기회손실 비용까지 합치면 피해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2003년부터 반복되는 일상이 돼버린 사태는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 초기 대응 부실

이번에 유행한 H5N6형 AI는 감염 속도가 빠르고 조류에 치명적이어서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한 제1종 가축 전염병이다. 바이러스는 계속 변이하면서 강해졌는데, 정부의 방역 체계는 개선되지 못하고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게 피해 규모를 키웠다. 가까운 일본 정부의 대응 수준과 피해 양상을 보면, 우리 정부의 허술함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정부는 발생 한 달이 훨씬 넘어 지난해 12월23일에야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AI가 발생한 일본은 확진 판정 2시간 만에 아베 신조 총리가 한밤중에 직접 방역을 지시하는가 하면 12시간 만에 AI 경보를 최고 등급으로 상향하고 범정부 차원 대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런 신속대응으로 살처분 가금류는 110만 마리에 그쳤다.

철새보다는 방역시스템의 실패

정부는 AI 유입 원인을 철새로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의 사례로 볼 때 조류인플루엔자의 유입, 확산 원인을 계속 철새에 두게 됨으로 인해 근본적인 원인 대처에 소홀하게 됐다. 더구나 2014년엔 겨울철새들이 서식하지 않는 6월에 AI가 발생했다. 감염된 닭의 분변 1g에는 십만에서 백만 마리 닭을 감염시킬 수 있는 고농도 바이러스를 포함하고 있다. 이 분변에 오염된 차량이나 사람, 사료, 관리기구 등을 통해 더 쉽게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철새가 AI 바이러스를 외부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철새 분변에 묻은 바이러스를 축사 안으로 옮긴 것은 결국 사람이다. 철새 분변에서 가금류 농장 한두 곳이 AI에 감염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농장 간 확산은 사람이나 차량 등에 의한 것이고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은 방역시스템의 실패다.
▲ 우리나라에서는 AI가 발생하면 발생 농가 500m, 3km 내의 건강한 동물들을 '예방적' 살처분한다. 선진국에서는 사례가 없는 무모한 살처분으로 비과학적인 동물 학대라는 의견이 많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

설사 철새가 바이러스를 옮겼다하더라도 AI가 급속히 확산하게 된 원인은 열악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익을 챙겨야 하는 농가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더 많은 닭과 오리를 기르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닭과 오리에게는 AI에 대한 충분한 면역력을 기대할 수 없다. 비위생적으로 좁고 열악한 생활환경은 질병 발생의 최적의 조건이다. 더구나 공장식 밀집 농장은 수십만 명이 탄 거대한 크루즈와 비슷해서 위생 관리가 잘되더라도 한번 파도에 휩쓸리면 재난에 가까운 피해가 난다. 사육 환경이 쾌적한 충북지역 복지농장 23곳에서는 지난 3년간 AI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정상적인 사육 방식이 화를 키워

1970년대 '잘 살아보자'는 구호는 우리의 모든 생활을 바꾸어놓았다.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오면서 사는 곳도 아파트로 바뀌었고, 먹는 식단도 밥과 채소류 중심에서 고기류 중심으로 바뀌었다. 그런 결과로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970년에는 5.2㎏이었는데, 2015년에는 47.6㎏으로 9배 이상 늘게 되었다. 싼값에 축산물을 먹기 위해 닭들은 닭장에서 밀집 사육되면서 면역성이 떨어졌고, AI가 발생하면 주변의 멀쩡한 닭까지 살처분하여 죽어가는 운명이 됐다. 치맥, 치느님 등으로 대접받는 닭은 살아있는 동안부터 죽는 순간까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고기로 만들기 위해 사육되는 연간 약 1억 마리 닭들은 모두 사람으로 치자면 고도비만이다. 그것도 일정 부위만 집중적으로 살이 찐다. 생산성과 상품성을 늘리기 위해 더 빨리 성장하며 특정 부위에 살이 많이 찌는 품종을 개량해 비정상적인 몸집을 만든 것이다. 국내에서는 사육 기간 33일 만에 농장에서 닭을 출하한다.

우리가 먹는 닭은 사실 몸집만 큰 병아리다. 생산성만을 고려한 품종 개량은 반대로 면역력이 약한 품종을 만들었고, 유전자를 단일화해 수만 마리를 한꺼번에 사육하는 농장 안에서 개체간 질병 전파 속도가 빨라지게 됐다. 완전 밀폐된 구조로 산란율을 높이기 위해 인공조명으로 일조시간을 인위적으로 연장시켜 잠자는 시간을 단축시킨다.

수천수만 마리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차 배설물과 사료에서 발생되는 암모니아 가스로 눈이 아프고 극도로 악화된 공기로 호흡하고 있다. 처참하게 살아가는 닭들은 극한적인 열악한 생태환경에 장기간 노출로 대사기능이 악화돼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항생제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비정상적인 성장은 다리장애, 기립불능, 심장병, 급사증 등으로 닭이 사는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게 하고 있다.

인류에 대재앙이 우려되는 강력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는 AI 최고의 온상은 다름 아닌 더럽고 배설물로 가득한 심하게 오염된 공장식 축산에 있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은 마치 압력 밥솥처럼 바이러스가 자라고 퍼지기에 안성맞춤이다.
▲ 공장식 축산시스템에서 사육되는 닭들은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AI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속수무책이다.
닭이 안전해야 사람도 안전하다

그렇다. 이제 매년 반복되는 끔찍한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만든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건강한 사육방식을 통해 건강성을 유지시켜주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열악한 축산 농가들이 전염병을 예방할 사육 환경을 조성하도록 유도, 지원해야 한다. 더불어 치느님이란 신조어, 치킨과 맥주를 뜻하는 치맥이란 문화까지 만들며 사육 숫자 증가에 일조한 우리 또한 AI 발생과 그 피해를 만든 원인 제공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고기를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공장식 축산의 확대로 인한 동물의 고통과 환경오염을 줄이며, 우리의 건강까지 지킬 수 있다. 우리가 먹는 닭이 안전해야 사람도 안전하다.

하루에도 수만 마리 닭들이 땅에 파묻히는 중에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을 맞았다. 닭이 울면 어둠이 끝나고 새벽이 온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 어둠이었다.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알리는 닭처럼 지난해의 액운은 모두 물러가고 힘찬 새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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