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광 교무/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며칠 전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렸다. 온 세상이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 사거리에서 적색신호등이 들어와 잠시 멈춰 서있는데 반대편 차량의 불빛에 반사되어 눈송이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 불빛 사이로 내리는 눈송이는 참 아름다웠지만 그 눈송이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부서지면서 아름다운 모습도 없이 바람에 그냥 흩날려 버렸다. 하늘에서 내려올 때는 공들여져서 만들어졌을 것인데 땅에 떨어질 때는 참 무섭게 부서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 눈송이 하나가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때 구름을 이루고 있는 물방울들이 온도가 낮아 얼음 알갱이가 되면서 이 얼음 알갱이에 수증기가 달라붙고 이것이 점점 커지다가 무거워지면 땅으로 떨어지는데 이것이 눈송이가 된다. 또 이렇게 내린 눈송이가 다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함박눈, 가루눈, 싸라기눈, 진눈깨비가 있다. 함박눈은 날씨가 따뜻하고 습도가 높으며, 바람이 별로 불지 않을 때 내리고, 가루눈은 바람이 세게 불고 추운 날에 내리고, 싸라기눈은 얼음 알갱이 형태로 내리는 눈으로 빗방울이 갑자기 찬바람을 만나 얼어서 내리고, 진눈깨비는 비와 함께 내리는 눈이다. 이렇게 눈의 종류가 몇 가지로 나눠지지만 더 깊게 들어가서 보면 그 기온과 수증기의 양에 따라 서로 다른 모양을 한 수많은 얼음 조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눈의 모양만 해도 6,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눈송이 하나가 땅에 떨어져 없어지는 것이 별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이렇게 여러 기온과 종류로 또한 그 성질에 따라 어렵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면 눈송이가 그냥 없어지는 것이 허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리의 이치가 세상 만물이 단지 변화할 뿐 그냥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안다면 조금이나마 그 허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가 일원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불변의 측면인 유상과 변화의 측면인 무상을 말씀했다. 그러나 이 유상과 무상이라는 개념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일 뿐이지 원래 두 면으로 나눠진 것이 아니다. 그 중 우주를 무상 곧 변하는 진리로 보면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인데 그 변해지는 것이 아무 원칙이 없이 변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순환하는 원칙이 있어 음양상승의 도를 따라 상생ㆍ상극의 과보로, 인과보응의 이치에 따라 변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눈송이도 이 변화하는 이치에 따라 여러 종류로 변하고 또 다시 그 변화에 따라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어지는 것이다. 적색신호로 잠시 멈춰 있었던 그 짧은 시간에 적적한 차 안에서 성성한 성품이 내 마음에 질문을 한다.

'반대편에서 비쳐오는 불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눈송이에서 우주를 보았는가. 눈송이의 모양을 보면 저 높은 하늘의 온도를 알 수 있다는데 지금 나의 마음을 보아 영생의 진강급을 알 수 있는가' 이에 대답을 하려는 순간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어 출발하기에 바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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