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의 문화코드

▲ 허경진 교도/강북교당


소설 한 구절 매료돼

가야금 배워

좋아하는 일에

공들이는 것도 지혜

신년법문 메세지 깊어


다음은 소설가 김훈님의 소설 〈현의 노래〉의 일부이다.

"줄을 튕길 때 솟아나는 소리가 세상의 허공 중에 머물다가 사라지는 그 잠시 동안에 소리는 떨리고 흔들리면서 새로운 무늬를 짜 나갔고 무늬들은 처음 솟아난 소리가 스러질 때 함께 스러졌는데 이어서 새로운 소리가 솟아나면서 새로운 무늬가 퍼졌다. 우륵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시간을 느꼈다. 몸속에서 그 시간은 지금까지 없었던 낯설고 새로운 시간으로 바뀌어 몸과 함께 출렁거렸다."

가야금 줄을 튕기는 짧은 그 순간을 이토록 세밀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어느 장인의 그것과 비슷한 작가의 정성을 느끼며 나는 문장의 아름다움을 강하게 느꼈다. 가볍게 읽은 분들은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은 비슷한 제목의 '칼의 노래'가 더 유명하다. 그러나 나는 음악을 좋아해서였는지 '현의 노래'라는 소설에 더 강하게 끌렸고 재미있게 읽었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고 '현의 노래'는 가야에서 신라로 가 가야금이란 악기를 알린 우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인데 이 소설을 읽고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니 위에 제시한 문장에 끌려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너무나도 생생했던 소설 속의 가야금 소리에 대한 묘사에 홀려 그 소리를 직접 내어 보고 싶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 많은 소리에 노출되어 끊임없이 들어오는 소리들 때문에 그 어떤 맑고 아정한 소리는 귀에 안 들어오는지도, 아니 감지하지 못 하는지도 모르겠다. 소리를 지키기 위한 늙은 악사의 힘, 소리를 표현하는 그 세밀한 단어들 그 가야금 소리를 그때 그 감성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가야금도 개량되어 17현, 25현이 나오고 현대곡을 많이 연주하기도 했지만 나는 내 키만한 12줄 산조가야금을 들고 다니며 산조의 일부를 연주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그리고 내가 목표한 바를 조금 이루었을 때 12줄 가야금을 위한 '현의 노래'라는 곡을 만들어 연주하였다. 전문연주가가 연주해 주었는데도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손가락에 어느 정도 굳은살이 생겨 예전처럼 아프지 않은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익숙한 악기인 피아노를 위한 '현의 노래'를 다시 만들었다.

이 곡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가야금의 다양한 주법을 피아노에서 표현해 보자는 것이었다. 국악기에서 가야금의 비중이 서양악기에서 피아노의 비중과 비슷하다는 생각과, 피아노 역시 그 내부를 보면 현의 울림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이기 때문에 두 악기 간에는 연결고리가 많았다.

피아노 내부의 현을 직접 건드려 소리내기도 하고 피아노로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소리를 탐색하며 열심히 재미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곡 역시 전문연주가가 연습하여 공연장에서 연주하였다. 이 곡은 내 마음에도 들었고 많은 관객들도 좋아해주었으며 무엇보다 연주자가 좋아해준 것이 가장 기뻤다.

102년 새해 종법사께서 내려주신 신년 법문을 읽으며 문득 이때가 떠올랐다. 내 나름 힘든 시기였는데 좋아하는 일에 공을 들이며 잘 지나갈 수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고 한 문장에 매료되어 가야금을 배우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곡을 만들어 본 경험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한 해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신년법문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내 마음에, 내가 당하는 그 일 그 일에 그리고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공을 들이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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