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와 아들의 자력

서울에서 특별한 일거리 없이 공무원시험 준비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아들에게 다음달부터 생활비도 방세도 안 주겠다고 선포를 했다. 그날이 다가왔다. 아들이 현실적으로 뭔가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주자면 이런 결단이 필요하다 하면서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방세와 생활비는 안 주더라도 가끔씩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먹을 것을 보내줄까?

남편이 아들과 통화하도록 해서 아들이 경제적으로 힘들 땐 돈을 좀 부쳐주도록할까, 무슨 핑계로든지 통장에 10만 원 정도는 슬쩍 꽂아줘도 괜찮겠지? 시아버지에게 내가 생활비 안 보낸다고 말하면 바로 아들에게 전화해서 돈이 모자라지 않느냐고 입금해줄 건데.

왜 이럴까? 결정을 해 놓고도 아들이 힘들까 걱정이 된다. 혹 먹고 사는 데에 찌들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어쩌지. 그래서 세상과 더 등질까 두려워지는 마음이다.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지가 알아 세상 밖으로 나갈 거라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 아닌가. 그런데도 마음은 이렇게 요란해지고 힘이 든다. 아르바이트하는 아들을 보면서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겠다고 안심이 돼 내린 결정인데도 요란해지는 마음을 보니 아들을 못 미더워 하는 마음이 크다.

내가 아들을 못 믿는구나. 아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도 못 믿겠고, 아들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기술이 있는지도 못 믿겠고, 아들이 자신 안의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날 용기가 있는지도 못 믿는구나.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아들을 이렇게 못 믿는 건 실은 나 자신을 못 믿는 것이구나.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끌려 다니면서 모든 게 다 걱정되는 내 마음을 보니 아들에게서 도저히 분리될 것 같지 않아 불안해지는 내 마음을 못 믿겠고, 아들과 원만하게 지낼 만한 기술이 있는지도 못 믿겠고, 아들을 볼 때 일어나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는 용기가 내 안에 있는지를 못 믿는구나.

내가 나를 온통 부정하는구나. 이런 나의 거울을 통해 아들을 보니 아들은 자력이 없고 독립적이지 못하고 원만한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로 보이는구나. 내가 정말 그렇구나.

문답감정 : 도선님 걱정 많이 되시지요. 당장 생활비를 끊어버리면 아이가 고생하고 빚질 일이 뻔하니까요. 지금 생활비를 끊어버리고 싶은 나의 마음을 잘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생활비를 끊으면 자력이 생길 것이고 힘든 생활을 하다보면 자기도 뭔가 달라질 것이다 하면서 생활비와 아들의 자력생활을 묘하게 거래하고 있는 내 마음이지요.

이런 전제가 있다는 걸 빨리 알아차리면서 그 일어나는 마음작용을 가지고 공부하시는 실력이 대단하셔요. 이 실력은 일상의 삶 속에서 크든 작든 경계마다 멈추고 내 마음을 보는 일을 반복하면서 커져 갑니다.

지금 그 공부를 이렇게 잘하고 계시는 겁니다. 생활비 끊는 걸로 아들의 자력을 세워봐야겠다는 나의 야심찬 전제를 보니 자력이 없는 아들은 결국 자력이 없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허상임을 바로 깨닫게 되었네요. '가치 있고 좋은 삶이란 자력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 있게 사는 삶'이라는 이 찬란한 전제. 그래서 모든 분별성과 주착심은 공부 삼기만 하면 이런 반전이 늘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합니다.

아들에게 생활비를 주기도 거두기도 하면서 이렇게 치열하게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엄마가 있어 아들은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늠름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줄 때도 거둘 때도 100%인 진리자리 이제 믿어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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