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쾰른교당은 현지인을 대상으로 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자체 세미나를 열어 현재 10회 정도 진행했다.
선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10년째. 극도의 시험 속에 1년 가까이 건물 리모델링을 마친 뒤, 원기93년 1월1일을 맞았다. 홀로 신정절 기원을 올리고 영지를 돌던 중, 한 이웃을 만나 대화를 하게 됐다. 그는 요가를 배울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꿈도 못 꾸던 때였다.

나는 일단 그를 교당으로 안내해 법당을 보여주고 마음을 확정하게 했다. 그리고 그 주말, 아무 기척이 없어 조용히 포기하려던 찰나, 정확한 시간에 벨이 울렸다. 이렇게 무작정 선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세 번째까지는 통역에 의지해 진행했다. 하지만 이해 없는 통역보다는 차라리 직접 부딪혀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로서는 천지가 개벽할 용기를 냈다.

독일은 불교에 호의적이어서 달라이 라마가 가장 많이 초대받은 나라이다. 더욱이 쾰른은 다양한 불교단체뿐 아니라 자체적 선 모임들이 운영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현지인에게는 불교의 종합시장이 형성되어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경쟁력이 없으면 바로 낙오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요가가 아닌 선 프로그램을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원불교적 선법을 전할 것, 둘째 대산종사의 선 체조를 전수할 것, 셋째 독일인들의 체력에 맞게 넉넉한 시간을 할애할 것, 넷째 유지기반을 위해 유료로 정착할 것 등이었다.

이러한 원칙하에 90분짜리 선 프로그램에 차 공양을 곁들였다. 첫 시간부터 염불 10분을 넣고, 좌선은 정전의 호흡법에 따랐다. 대산종사의 선 체조는 그림으로 동작을 그리고 몸으로 시연하면서 선객과 함께 멘트를 만들어 갔다. 하나하나가 모험이었다. 지금은 많은 숙련이 돼 일상수행의 요법을 독일어로 암송하고 선 프로그램을 한 후 짧게 <대종경> 법문을 연마해 법회에 준하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선 프로그램을 운영한 지 1년쯤 됐을 때, 나에게 당면한 물음이 하나 있었다. '선객으로서 이들이 얼마 동안 원불교를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선객들이 교도로 성장하거나 장기 선객이 돼야 비전이 있는데, 이를 위한 길은 '세미나'를 여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무슨 묘한 인연인지 현지인만 대상이 되고 있는 이곳에서 몇 달 어학원 가 본 것이 전부이니, 세미나는 '꿈'이었지 사실은 아무 대책이 없었다. 그러나 그냥 지나가면 끝이라는 심정으로 "세미나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근근이 소통을 할 뿐이었는데 선객들이 한편 놀라고, 한편으론 궁금했는지 9명의 현지인 선객들이 모였다.

커다란 칠판 앞에 밀리듯이 이끌려 서게 될 때까지 나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몇 분의 침묵이 흐른 뒤, 나도 모르게 '터 닦을 선'을 큼지막하게 '한자'로 썼다. 이때의 경험은 숨길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리고 설명을 시작했다. "이것이 '선'이라는 한자어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들어있다. 하나는 본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하나'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해서 무아지경으로 한 시간의 선 강좌를 풀어갔다. 이어서 분반모임과 발표를 감행했다. 대체 누가 시킨 것이며 누가 한 것인가. 순식간에 시간은 세 시간이 흘렀고 이를 마친 뒤 대중은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하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했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현재 10회를 넘었다. 소수이지만 교도와 선객들은 세미나를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준비하여 참여하고 <정전>과 <대종경>에 대한 믿음도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 이명희 교무/독일 쾰른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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