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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지켜본 남편의 배려
말없이 지켜본 남편의 배려
  • 김선열 교도
  • 승인 2017.02.24
  • 호수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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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열 교도/대신교당
교무 도와 꽃꽂이 점심공양 시작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 깊이 공감
봉공회장으로 신앙의 꽃·열매 맺길


나의 공부담은 원불교를 알게 되면서 얻은 변화와 그 소득에 대한 이야기다.

연애하는 3년 동안 종교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던 남편이 결혼과 동시에 교당에 인사드리러 가자고 했고, 처음 방문한 교당의 일원상은 별 부담 없이 편안하게 와 닿았다. 그렇게 입교한 후 착할 선 기쁠 열이라는 법명을 받게 됐다. 선열이라는 법명으로 인연을 맺고 두 아들을 출산해 키울 때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일요일만큼은 부족한 잠을 꼭 자야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런 나를 집에서 쉬게 하고, 남편은 두 아들과 기저귀가방을 챙겨 일요일마다 교당에 갔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에도 남편은 "교당갈래?" 하고 한 번 묻고는 안 간다고 하면 또 아이들만 데리고 교당에 갔다. 그렇게 10년 동안 지냈다.

어느 날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교당에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저렇게 열심히 다니는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문득 '나도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아무 말 없이 나는 남편을 따라 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니 변함없는 모습으로 교당에 즐겁게 다니던 남편이 참으로 대단하다.

그 후 나는 남편과 함께 교당에 다니게 되었고, 우주만유의 근원자리와 인과보응의 진리를 들을 때 '아~ 그렇구나' '정말 과학적이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런 나에게 예상치 못한 상황이 찾아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주부로서 생활하는 것이 별 흥미도 없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지내는 시간이 하찮게 느껴졌다. 남들 다하는 일은 내일이 아닌 것 같고, 아침 출근시간이면 까닭 없이 초조해지는 나의 마음을 보게 됐다. 마치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만 뒷걸음질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니 결국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얻고 말았다.

그러던 중 교당에는 두 분의 남자 교무님께서 부임 받아 왔다. 공황장애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나는 교무님들이 걱정이 됐다. 식사는 어떻게 하실까, 꽃꽂이는 누가 하지? 나라도 해줄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마음을 먹었다. 교무님을 찾아가 "꽃꽂이는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나니 책임감이 생겼다. 이어 일요일 점심식사 정도는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돼 남편에게 의논하니 그는 "좋은 생각이다. 시장 보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꽃을 꽂기 시작했고, 매주 법회 후 국수 공양을 시작했다. 옆에서 보기에 안타까웠는지 교도님이 점차로 손을 보태줬다. 사실 음식 간보는 일도 어렵고, 라면 물도 못 맞추던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를 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한동안 내가 만든 음식에 간이 맞지 않았음에도 참고 인내하며 맛있는 척 해준 교도들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그렇게 생활한 지 7년째 되던 해였다. 내 나이 마흔세 살에 사은님이 큰 은혜를 안겨주었다. 특수학교에서 처음으로 원예교사를 뽑는다는 공지를 듣게 됐고 나는 서둘러 원서를 접수했다. 원예 전공했지만 워낙 취업문이 좁아 경쟁률이 엄청 높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이 많이 됐다. 나의 염려와는 달리 법신불 사은의 호념으로 나는 당당히 합격하고 새 출발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감사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성한 몸 받기 어렵다 했는데 불편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성한 몸인 내가 얼마나 복 많은 사람인지 알게 됐고, 그 덕분에 공황장애라는 병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나 자신에게만 집착하여 병을 앓고 있던 선열이가 너와 우리를 생각하는 선열이로 바뀌게 되고, 깡말랐던 선열이가 약간은 통통해진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또한 까칠해서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던 성격도 웬만해선 화를 잘 내지 않는 선열이가 되어갔다.

지난해 100년성업 정진기도 때는 온 가족이 함께 1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백배 절수행을 했다. 그 후에도 성업기도는 계속했다. 매주 교무님의 설법을 마음으로 체득하고, 교법을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봉공으로 실천해 나가다보니 가는 곳마다 알찬 공부인으로 거듭나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대중 앞에 나서기 꺼려하던 내가 대중 앞에서 강연도 하고, 사회도 보고, 재작년부터는 봉공회장이라는 큰 직함도 받게 되어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봉공으로 달라진 인생이기에 봉공으로 불공하고 봉공에서 신앙의 꽃을 피고 결실을 맺기를 다짐해본다.

항상 많은 선택의 길에서 도움을 주는 남편과 문답감정을 통해 해오를 얻게 해준 박유정 교무님, 그리고 나의 기도 속에 자주 찾아와 주는 법신불 사은에게 법 향기 가득한 감사를 전한다. 기쁨 충만한 사람들이 어서 빨리 건강하고 법력증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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