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큰 신성 바친 사람은 물질에 뜻을 두지 않아
신성은 종교의 본질, 지식의 범주를 넘어서



佛言- 博聞愛道하면 道必難會요 守志奉道하면 其道甚大니라.
"부처님 말씀하시되 오직 널리 듣고 많이 보는 것만으로써 도를 사랑하는 이는 도리어 도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요, 먼저 신(信)을 세우고 뜻을 지켜서 천만 경계에 능히 흔들리지 아니함으로써 도를 가진 후에야 그 도가 반드시 크게 되리라."

〈사십이장경〉 9장의 말씀은 지식만으로는 도를 이룰 수 없고 오직 바른 믿음을 바탕으로 경계에 흔들지 않은 실행공부를 계속해야만 마음의 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의 법문이다. 또한, 공부하는 이유도 단순히 많이 듣고 알아서 잡다한 지식을 넓히기 보다는 실행을 통해서 진리를 구현하고자 함이다.

교단에서 신성에 대한 예를 들자면 당연히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 사이의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결국 한 말씀으로 정리된 법문이 다음과 같다 "내가 송 규 형제를 만난 후 그들로 인하여 크게 걱정하여 본 일이 없었고, 무슨 일이나 내가 시켜서 아니 한 일과 두 번 시켜 본 일이 없었노라.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이 되고 그들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 되었나니라." (<대종경> 신성품 18장)

또한, 교단 초기에 구정(九鼎)선사의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었다고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가르치고자 하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하기 보다는 예화나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큰 도를 구하기 위하여 큰 신성을 바친 사람은 제 몸과 제가 가진 물질과 제 정성을 아끼지 않나니 만일 아낌이 있다면 참 신성은 아닌 것이다"하고 "그대들은 그대들의 신심과 정성을 스승에게 아끼고 있지나 않는가 생각하여 보고 구정 선사를 표준삼아 다시없는 신성을 드리대어 보라."(<대종경선외록> 은족법족장 5장)

<대종경선외록>에 밝힌 구정선사의 이야기는 나의 신심과 공부심을 돌아보는 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옛날에 구정선사는 부유한 가정에 두 부인을 거느리고 살면서 큰 장사를 하는데, 하루는 비단과 백목 수백 필을 말에 싣고 어느 재를 넘다가 쉬고 있었다. 그때 어떤 스님이 엷은 옷에 떨면서 지나갔다. 구정선사은 자비심이 일어나서 그 중에서 백목 한 필을 주려 하다가 아까와서 못 주기를 몇 차례 마음속으로 반복한 후에 큰 힘을 써서 한 필을 떼어 주어 보내고 마음에 쾌활함을 금치 못하였다. 얼마 후 어떤 거지 한 사람이 자기가 스님에게 주었던 그 백목 한 필을 어깨에 걸치고 고개를 넘어왔다. 구정이 이상하여 그 이유를 물은즉 거지가 말하기를 "이 고개 너머에서 젊은 스님 한 분이 나를 보고 네 옷이 내 옷보다 더 급하니 이것 갖다 옷 지어 입으라고 주었다" 한다. 구정선사가 그 말을 듣고 나니 가슴이 벙벙하고 머리가 무거워서 큰 매를 맞은 듯이 스스로 부끄러웠다. 자기 재산을 전부 계산하면 백목이 수천 필인데 그 중에서 한 필 주는 것도 그렇게 힘이 들고 애가 쓰였거늘 그 스님은 한 필 얻어 가지고 가던 백목을 거지에게 주는데 그렇게 썩은 새끼 떼어 주듯 하니, '그 분이 필시 큰 보물을 갖춘 도인이로구나' 생각했다.

그리하여, 끌고 가던 거마와 주단 포목을 모두 재에다 내버려 두고, 맨몸으로 그 스님을 따라가서 예를 올리며 제자 되기를 간청하였다. 그 스님이 말하기를 "그대가 지금의 이 마음을 평생토록 계속 하겠다고 생각되면 따라와 보고 만일 중간에 변동이 있게 생겼으면 애당초에 그만 두라"고 말했다. 구정선사가 평생토록 스님을 따르겠다고 서원하고 스님의 보따리를 받아 짊어지며, 해가 질 때까지 굶고 걸어서 스님의 절로 찾아가 보니, 세상에 없는 빈찰(貧刹)이었다. 양식도 없고 나무도 없을 뿐 아니라 늙은 자기가 자식 같은 그 스님을 시봉하게 됐다. 그 스님은 방에 들어가서 명령하기를 "내가 발을 좀 씻고자 하니 물을 데워 오되 솥이 잘못 걸려 있으니 솥을 먼저 고쳐 걸으라"고 말했다. 몹시 춥고 시장하나 할 수 없이 언 흙을 파서 찬물에 이겨가지고 솥을 고쳐 걸었다. 그런데, 스님이 나와서 보고 "솥이 잘못 걸렸으니 다시 고쳐 걸라" 하며 뜯어 고치게 하기를 밤새도록 아홉 번을 했다. 스님이 드디어 허락하시고 물을 데어다 발을 씻고 그 솥에다 밥을 지어 오게 하여 먹은 후에야 비로소 구정(九鼎)이라는 법호를 내려주며 시봉을 하라 했다.

구정은 그런 후로 수십 년간을 젊은 스님에게 일체 시봉을 드리면서 스님을 오직 큰 도인으로 알고, 믿고 의지하고 살아갈 뿐이요 별다른 법문 한번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젊은 스님이 중병이 들어서 임종이 가까와지는지라 최대의 정성을 바쳐서 간병을 계속하다가, 우연히 한 생각을 얻게 됐다. 스님이 이치를 깨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깨쳐 알아야 하는 것임을 확철대오 했다. 그 후 구정선사는 모든 사리에 막힘이 없어져서 큰 회상을 펴고 수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평범한 지식과 잡다한 정보로는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특히 종교의 본질인 신(信)은 지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니 진실한 신앙인이 되고 싶다면 널리 알기보다는 깊은 침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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