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128장, 원기75년 교화부에 의해 새성가로 제정

- 피은자라고 고백할 때 법신불 사은의 도 체받아

- 어려운 일 당해 결정될 기도와 서약 올릴 원력

▲ 성가 128장은 송관은 교무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묵상기도나 기원문 후 부르는 공식적인 의식 성가다. 사진은 원불교사진협회 조성환 작가의 '기원' 작품.
128장) 서원을 이루어주소서(心告歌)
송관은 작사·작곡

1. 거룩하신 법신불 사은이시여
우리들의 서원을 이루어주소서
진리와 은혜의 부처되도록
우리들의 서원을 이루어주소서

2. 거룩하신 법신불 사은이시여
우리들의 서원을 이루어주소서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도록
우리들의 서원을 이루어주소서



심고가의 탄생

〈성가〉 128장 서원을 이루어주소서(부제 심고가)는 월타원 송관은 교무가 작사·작곡한 작품으로, 법회나 기도 때 기원문과 묵상심고 후에 부르는 공식적인 의식 성가이다.

송관은 교무는 소태산 대종사를 외할아버지로, 정산종사를 큰아버지로 두었으며, 부친 주산 송도성 종사와 모친 청타원 박길선 종사의 5남1녀 중 외동딸로 출생했다.
원기54년 항타원 이경순 종사의 추천으로 전무출신을 서원하여, 서울출장소 근무를 시작으로 원광대학교 음대교수로 봉직하며 교단과 음악을 아우르는 음악교화와 교무로서의 삶을 일관했다.

새성가(127~162장)의 경우 대부분 첫 소절을 제목으로 삼고 있으며 부제가 없는 것이 일반적인데, 성가 128장의 경우는 마지막 소절을 제목으로 삼고 있으며 '심고가'라는 부제까지 붙어 있다.

이러한 〈성가〉 128장 서원을 이루어주소서는 탄생 일화가 있다. 원기56년(1971) 10월에 반백년기념대회를 지낸 뒤 원기57년에 〈학림(學林)〉 창간호가 발행된다. 〈학림〉은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기숙사생들인 예비교역자들의 정기간행물로, 창간호 제호는 동산 이병은 종사의 글씨로, 1호부터 5호까지는 등사본이며 이후는 인쇄판이었다.

〈학림〉은 당시 예비교무였던 조학심, 김복원, 김도종, 황인철이 주축이 되어 발간된다. 젊고 패기 넘쳤던 학림기자들은 〈학림〉이 원불교의 새로운 문화, 원불교의 혁신을 이끌어야 된다는 취지가 강했다. 특히 반백년기념대회를 지낸 직후이기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높았던 것이다.

그 욕구 중 하나가 원불교 의식의 대중화였으며 특히 신앙성이 강화된 의식이 요청되었다. 법회의식에 있어서도 법신불전에 헌배부터 하고 기도와 심고를 중심으로 하며 노래도 신앙적 감성을 이끌어 내는 〈성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차적 요구가 바로 '심고가'였던 것이다. 심고를 하고서 부르는 〈성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요청과 필요에 따라 학림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당시 원광대학교 음대 강사였던 송관은 교무에게 새 성가를 부탁하니, 송 교무는 "126곡 성가집이 있는데 무슨 새 성가를 다시 만드느냐?"며 놀란 표정으로 난색을 표한다. 126곡 원불교 〈성가〉집(원기53년)이 구비되어 이를 보급하는 일이 우선일 때 새로운 성가를 만든다는 것은 권장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야회 볼 때만 사용할 것이니 심고 후에 부르는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부탁하게 된다. 그 당시 수요야회는 대각전 또는 공회당에서 예비교무들이 주관하였으며 감상담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기획 하에 추진된 본의에 결국 동의한 송관은 교무는 작사까지 하여 곡을 만들게 된다.(이상은 김도종 교무의 회고)

그래서 당시 원불교학과 학생들은 손으로 그린 오선지 악보를 보고 수요야회에서 부르기 시작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성가 하나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원불교 법회의식을 신앙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개혁의지의 반영이었다.

〈학림〉지 1~5호에는 '개교축제의 노래' '귀여운 어린이' '마음의 내 고향 총부' '하섬 성도절' 등의 노래도 실리게 되며, 향후 〈학림〉지에는 많은 창작 성가가 실리게 된다.

우리들의 서원을 이루어 주소서

〈성가〉 128장 서원을 이루어주소서에서 '진리와 은혜의 부처'되도록 '우리들의 서원'을 이루어달라고 심고하고 있다. 우리의 서원은 바로 진리와 은혜의 부처가 되는 것으로 즉 진리불(眞理佛)과 은혜불(恩惠佛)이 되는 것이다.

진리와 은혜는 하나이면서 양면으로, 진리의 화현이 은혜이며 은혜의 바탕이 진리인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가 체(體)라면 사은의 은혜가 용(用)이 된다. 법신불이 사은으로 화현되는 것으로, 천지·부모·동포가 다 법신불의 화신이요 법률도 또한 법신불이 주신 바이다.(〈대종경〉 교의품 9장)

그러므로 법신불 사은을 신앙하는 것은 바로 진리와 은혜의 부처가 되고자 하는 서원으로, 법신불이신 사은의 도와 은덕을 체 받아서 보은하는 것이 바로 진리와 은혜의 부처가 되는 것이다. 또한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도록 하는 그 빛은 진리의 빛이요 은혜의 빛이다. 법신불 당체는 진리 자체의 빛으로 그 진리의 빛에 따라 세상에 은혜의 빛이 밝혀지는 것이다. '어두운 세상'은 법신불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 은혜에 배은하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가〉 128장 서원을 이루어주소서의 핵심은 '거룩하신 법신불 사은이시여'에 있다 할 것이다. 진정으로 '법신불 사은'을 거룩하게 받들고 모실 때, 즉 법신불의 진리가 사은의 은혜로 우리에게 은덕을 하감하고 응감하듯이 우리도 그 진리와 은혜를 받들고(奉佛) 모시어(侍佛) 스스로 생불(生佛)이 되고 활불(活佛)이 되려는 서원을 올릴 때, 법신불 사은은 우리들의 서원을 이루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법신불 사은의 도와 덕을 체 받겠다는 서원을 올릴 때 '우리들의 서원'에 감응되는 것이다.

대종사님은 법신불 사은전에 고백하라고 하시었다. 이 고백이 심고의 핵심으로, 이 고백이 빠진 심고는 내용 없는 형식으로 혼 빠진 사람과 같아진다. 우리는 법신불 사은으로부터 진리와 은혜의 축복을 받은 피은자로, 옷을 입듯 은혜(恩)를 입은(被) 피은자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법신불 사은이시여'라는 신앙고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축복받은 피은자인 줄 깨달은 사람이 은혜를 생산하고 보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피은자'라고 고백할 때 나무뿌리가 땅을 만나듯이 우리는 자신할 만한 법신불 사은의 은혜와 위력을 알고 법신불 사은을 신앙의 근원으로 모시게 되는 것이다.

피은자라고 고백할 때 난경 속에서도 길흉이 없는 법신불 사은의 도를 체 받아, 지금은 어려우나 참회하고 노력하면 순경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신심이 생기는 것이요, 순경에는 방심하지 않고 조심하게 된다. 또한 즐거운 일을 당해서는 감사기도, 괴로운 일을 당할 때는 배은에 대한 사죄기도를 하게 되며, 결정하기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는 결정될 기도와 서약을 올릴 원력이 솟게 되는 것이다.

원음 산책

〈성가〉 128장 서원을 이루어주소서 반주를 듣노라면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 든다. 마치 풍선이 한 번 부풀어 오르다가 바람이 잠시 빠지는 듯하다가 다시 더 크게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다. 가슴가득 숨이 부풀어 오르다가 잠시 멈추더니 더욱 부풀어 오르는 심정이리라.

특히 첫 도입인 "거룩하신 법신불 사은이시여"의 부분이 핵심이다. 이 부분을 풍선이 터질세라 조심스럽게 부르듯 성스럽게 감정의 깊이를 심화시키는 것이 전체 분위기를 결정짓는다할 것이다.

〈성가〉 128장은 원기75년 교화부에 의해 새성가로 제정되며, 이 때 가사 중 '사랑과 진실'은 '진리와 은혜'로 윤문된다. 이 성가의 작곡자인 송관은 교무는 한 평생 원불교 음악문화 교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퇴임을 앞두고 평생 작곡한 400여곡과 자료들을 정리하여 내놓은 책, 〈나 길이 여기 살고 싶네〉는 '음악과 함께 한 보은의 삶'이라 말할 수 있다.

경희대학교 재학시절, 사제의 연으로 만나게 된 김동진 교수를 비롯한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들이 오늘날 우리가 즐겨 부르는 원불교 〈성가〉를 작곡하는데 대거 참여하게 된 것은 송관은 교무의 인연공덕이라 할 것이다.
▲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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