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서사극, '이 일을 어찌할꼬!'

인터뷰 전문(全文)

소태산 대종사 서사극인 '이 일을 어찌할꼬!'가 곧 연극무대에 오른다. 6월4일 서울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600석)에서 초연하게 될 '이 일을 어찌할꼬!'는 소태산의 구도, 대각, 전법, 열반을 배우들이 생동감 있게 표현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본사와 은덕문화원(원장 이공현)이 공동 기획한 '우리시대 코드를 읽다' 두 번째 인물로 이번 연극을 기획한 이윤택(64·법명 영태) 연출가를 모셨다. 은덕문화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소태산이라는 존재는 원불교에 국한된 성자가 아니다"며 "종교 철학적으로 천재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희곡 탈고 이후 심경을 밝혔다. 인터뷰 자리에는 이선종 원로교무가 배석해 그의 전방위 예술가의 삶과 소태산을 읽어내는 현대적 코드를 청취했다.

▲ 이 일을 어찌할꼬! 연출을 맡은 이윤택 교도는 보편적이며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 최근 희곡 대본 작업을 마쳤다고 들었다.
"희곡 집필 마무리는 영산성지에서 했다. 국제마음훈련원에서 3박4일 머물면서 소태산 대종사의 탄생가, 대각터, 삼밭재, 정관평, 영산원 등 곳곳을 안내 받으며 당시의 소태산 대종사의 흔적을 찾았다. 이번 연극은 연기자가 영광 사투리를 구사한다. 영광 사투리를 현장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김동주 교무(영광 토박이)와의 2시간 넘는 대본리딩 작업은 연극연출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 이 일을 어찌할꼬!는 어떻게 기획됐나.
"사실 오래전 황영규 원로교무가 밀양연극촌에 찾아와서 원불교100주년기념 연극을 제안했었다. 황 원로교무는 내가 부산 대신교당 학생회를 다닐 때 나를 지도했던 스승님이다. 그 이후 진전이 없었고, 나 역시 동국대학교 교수로 불교의 제도권으로 이동하다보니 여러 절차상 안되는 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문화사회부 이명아 교무와 연극인복지재단 이경민 정토(박대성 교무) 두 사람이 내 연극을 보고, 구체적인 작업을 제시하면서 성사가 됐다."

- 경산종법사와 접견 시 무슨 이야기를 했나.
"지난 2월 초 익산성지를 방문해 경산종법사를 접견했을 때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이적이나 신비주의, 타 종교를 비난하는 이야기는 빼고, 오로지 대종사만을 무대에 올리겠다고. 음악도 정가형식이나 남도소리 등 맑은 가사가곡체로 곡을 만들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종법사께서 좋아하셨다. 정가 음악은 우리 극단에 김월하(법명 만주화) 선생의 제자가 있어서 잘 해낼 것으로 본다."

- 연극 제목을 어떻게 뽑았나.
"김형수 작가 <소태산평전>의 소제목 '솥에서 난 성자'도 괜찮지만 '이 일을 어찌할꼬!'로 제목을 정했다. 너무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제목을 뽑았다. 영산에서 대본을 완성한 뒤 김주원 영산선학대학교 총장에게 보여줬더니, 무릎을 딱 치며 크게 좋아하셨다. 이 일을 어찌할꼬는 시대적 화두이자 우리의 영원한 화두가 아닌가. 개벽이니 소태산이니 하는 것은 너무 흔하다. 그 자리에서 이번 연극을 한번으로 끝내지 말고, 예비교무들이 무대에 올랐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물론 희곡대본과 음악 등을 보완해 드린다고 했다. 더불어 교당 청년, 학생, 어린이 버전으로 대본과 음악을 만들어 보급할 예정이다. 예전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기념으로 창극을 공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의 반성은 무대가 너무 크고, 창 위주의 공연으로 인해 내용이 제대로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할꼬!는 대사 중심 현대극으로 연출했으니 주제가 쏙쏙 들어올 것이다."
 
- 희곡에서 만난 소태산은 어떠했나.
"고등학교 때 경험한 원불교는 일상생활 속에 잘 스며든 종교였다. 이번에 작품을 준비하면서 박청천 교무의 〈초기교단사〉, 이혜화 교도의 〈소태산 박중빈〉 등 많은 양의 책을 봤다. 탐독한 결과 소태산 대종사라는 존재는 원불교에 국한된 성자가 아니었다. 스펙트럼이 아주 넓고 광대했다. 종교 철학적으로 천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성(城) 안에 집을 짓지 않고 황무지로 나갔는데, 그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소태산의 삶은 사유와 실천이 계속 반복된다. 보통 인간은 사유했으면 사유로 끝나는데, 실행하고 또 다른 사유를 생성시킨다. 변증법적으로 사유와 실천을 계속 확대 재생산해 내며 인문학적 최고의 경지를 완성했다. 원불교를 떠나 인간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이 됐다. 이 연극의 목표는 종교극이지만 일반 관객들이 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보편적이며 감동적인 무대가 될 것이다."
 
- 서사극에 담으려는 문화적 요소는 무엇인가.
"'소태산 식의 사유, 소태산 식의 실천'을 이야기할 정도로 작가로서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이번 작품에 문화적으로 3가지를 담아내려고 한다. 하나는 음악이다. 원불교 성가는 정말 정서와 곡이 언밸런스하다. 불교, 기독교식 음악이 그대로 들어와 있어 조화롭지 못하다. 그래서 음악을 정가나 남도소리로 가사만 남기고 편곡한다. 또 하나는 '만석중놀이'(만석승무曼碩僧舞 포교 수단으로 인형극을 했던 데서 시작됨)라는 동양적 놀이 형태를 재현해 낼 것이다. 마지막은 호흡이다. 호흡법을 이용해 전신, 단전뿐 아니라 움직임과 소리까지 연기자가 표현해 낼 예정이다. 종교극의 새로운 시도다."

- 청년 대종사의 역할을 두 명의 배우가 하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 대종사님은 만담(漫談)을 매우 잘 하셨다. 유머와 위트가 예화 속에 숨어 있다. 청년 대종사를 두 연기자가 맡았는데, 한 사람은 대각하기 전 모습을 클래식하게 연기할 예정이다. 대각 후 세상에 나올 때는 대종사와 외양이 매우 닮은 배우가 맡는다. 유머감각이 있으면서 위엄있는 연기를 펼칠 것이다. 두 배우 역시 내가 동국대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이다."

- 종교극이 어느 장르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맞다. 종교극은 사실 힘들고 어렵다. 교도들은 교화극이 되길 바라는 데, 일반 관객들은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연극을 원치 않는다. 역설적으로 순수 종교극이 성공한 일은 없었다. 모든 종교음악이나 종교극은 특정 종교의 영역을 뛰어넘는 보편성과 감동을 갖춰야 한다. 과연 내가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고민이다. 원불교는 대외적으로 특출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증산도는 민족성을 강조하고 있고, 천도교는 일본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대단히 조용하게 지내온 것이 원불교다. 일상적이며 범속한 원불교가 어떻게 4대 종교로 성장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소태산이라는 존재를 분석해 봤다. 극심한 일제탄압 속에 고뇌했던 소태산의 심경이 그려지더라. 이번 작품은 오로지 '소태산 박중빈'이라는 인물에 집중했다. 구인선진 등 제자들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 기존의 성자와는 무엇이 다른가.
"소태산을 철학적으로 보면, 아웃사이더, 방외인(方外人), 변방인이다. 존재 자체로 보면 기독교의 예수와 통한다. 독학(獨學)으로 자수자각하셨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독학했기 때문에 모든 사상에 자유로웠고, 그 덕분에 더 많은 사상을 섭렵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소태산 식 사유, 실천을 이야기한 것이다. 소태산이 위대한 것은 어릴 적 가졌던 의심을 잊지 않고 끝까지 궁리했다는 것이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면면약존(綿綿若存)하듯 의심머리를 놓지 않았다. 이것이 일반인들과 차이다. 궁리하며 도인도 찾았지만 도인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바로 내가 도인이 되는 실행을 한다. 성자로 가는 과정에 대단한 철학적 배경이 깔려 있다.
둘째는 사회학적 차원으로 보면 전형적인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생태적 아나키즘 공동체를 실현했다고 본다. 스페인의 농민들이 안달루시아에 국가를 믿지 않고 삶의 공동체, 조합을 만들었듯 소태산도 기존의 종교지도자와 완전히 다른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다른 종교가 굿이나 천도재 등에 힘쓸 때, 소태산은 자력적인 노동 생산운동으로 방향을 바꿨다. 방언공사, 숯장사, 금주금연 등 출발부터 다르게 나왔다. 삶 속에서 실천해 온 조합운동이 원불교의 힘라고 생각한다. 소태산의 조합운동은 우리시대에 꼭 필요하다. 현대인들의 문제를 해결을 할 수 있는 큰 대답이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뉴유토피아운동은 큰 국가가 아닌 우리들끼리,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같이 살자는 것인데, 공동취사, 공동주거를 추구하고 있다. 이 운동은 유럽에서 시작해 점차 한국에 상륙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소태산이 추구했던 공동체와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사회는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평등한 무정부주의로 갈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기초 공사를 해 놓은 이 부분이 지금 시대에 특히 유효하다."
 
- 연극에 등장한 인물 중 특별한 사람이 있다면.
"소태산의 사상을 일반인들이 너무 모른다. 김주원 총장은 '일반인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잘 모른다'고 답하더라. 그래서 이번 작품은 인간 소태산을 만나는 무대다. '이 일을 어찌할꼬!'는 현재 혹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되지만 사통팔달을 꿰뚫는 화두다. 작품에 독특한 인물이 두 명이 나온다. 바랭이네(사타원 이원화)는 천민 중의 천민으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았다.
하지만 젊은 청년 소태산 옆에서 구도과정을 돕고 후원한다. 기독교의 마리아 같은 인물이다. 또 한 사람은 황 순사(법명 이천)다. 일본의 앞장이라는 대중의 비난을 받지만 소태산을 지킨 제자로 후래에 평가 받고 있다. 후막으로 가면서 황 순사의 비중이 커진다. 이들을 통해 소태산의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작업하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내가 소태산을 성자로 본 것은 열반 장면이다. 점심 때 상추쌈을 드신 뒤 쓰러지자 제자들이 의사를 막 불렀다. 위중한 상황에서도 이게 어떻게 모은 공금인데 막 쓰느냐 나무라셨다. 두 번째는 황 순사가 문병을 오니 '경찰회의 때 불법연구회 이야기가 안 나오더냐.'고 물었다. 황 순사가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하자 '그럼 됐다. 됐어' 불법연구회를 열반 하실 때까지 염려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 이 연극의 절정 부분은 어디인가.
"참 고민이 많았다. 마지막 레퀴엠 장송곡을 어디서 터트리까 였다. 특히 소태산 대종사 장례행렬은 일제의 억압 에도 장관이었다. 연출가 입장에서 보면 한편의 드라마다. 기록 사진을 보면 남자 제자들이 머리띠를 두루고 상여를 옮기는 장면에, 순사들이 둘러싸고 있다. 교도들은 뒤 따르며 슬퍼한다. 이 장면을 영화로 만들면 웅장하면서 장엄할 것이다. 고민 고민하다가 장례행렬 가운데 '울음을 멈추시오, 울지 마시오'하는 소리와 함께 대미를 장식할 장송곡 레퀴엠이 울려 퍼진다. 찬란한 슬픔이 장엄되면서 대단원의 사사극은 막을 내린다."

- 소태산의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소태산 식 실천 중 교화단 조직은 참 놀라운 것이다. 소태산을 조직화의 귀재라고 부르는 것은 10인 1단 조직을 만들어 구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소태산 자신이 제자들과 몸소 일하면서 공부했고, 공부하면서 일을 했다. 이번 연극에서도 바로 그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신비주의적인 장면을 거의 뺐다. 일반인들이 이 연극을 보고, '아, 원불교에 대한 이야기(소태산)구나'하고 눈치를 챌 것이다. 종교극이지만 일반 대중이 봐도 무방한 연극을 만들고 싶었다."
 
- 원불교가 어떤 종교냐하고 묻는다면.
대부분 교도들은 교리적으로 설명한다. 교리적인 설명은 일반인들을 관념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그래서 교리보다는 소태산 대종사가 어떤 분인지를 이야기하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귀교의 부처가 어디에 있느냐고 시찰단이 묻자, 소태산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제자들을 가리켰다. 얼마나 감동이 있는 법문인가. 소태산의 존재를 확연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쉬운 점은 원불교가 민족종교이지만 민족적 색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종사는 민중문화 속에서 사셨고, 그 곳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대종사는 실제 민초 속에서 노래도 짓고, 제자들과 함께 부르며 민중문화를 즐겼다."

- 교단이 문화적으로 부족하다. 조언을 한다면.
"문화적인 것은 학부나 대학원 과정에서 예비교무들이 공부해야 한다. 교단이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극으로 만들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참 많다. 정산종사의 드라마틱한 삶도, 여성제자들의 헌신적인 모습도 그려보고 싶다. 프랑스 신비극(순환극)은 가톨릭에서 만들어 장소를 옮겨가며 공연하고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리는 몰몬교 종교극은 20~3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흥행 중이다. 물론 유명한 예술가들이 나오지만. 이제 원불교도 소태산과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음악, 미술, 예술이 나와야 될 시기다. 또 전국 훈련원에서 딱딱한 훈련만 시킬 것이 아니라 문화가 들어가야 한다. 호흡만 하면 재미가 없다. 호흡이 말이 되고, 춤이 되고, 이야기가 되는 문화명상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 문화적 토양을 풍요롭게 하는 적극적인 문화훈련운동이 시작돼야 한다."
 
- 호흡이 연극에 많은 도움을 주는가.
"호흡과 연극은 대단히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양산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 큰 스님을 3개월간 모셨다. 당시 오후2시~4시까지 침묵의 시간이었다. 각자 움직이지만 말은 못하게 했다. 침묵이 길어지니 호흡도 늘려지더라. 짧은 선 공부였지만 명상의 대단함을 느꼈다. 이번 연극에서 우두커니 수행에 몰입했던 청년 대종사를 어떻게 부각시키느냐도 관건이었다. 연마 끝에 범속한 성자로 유머와 위트를 겸비한 모습을 그렸다."

- 교당 학생회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대신교당 학생회를 다닐 때 교당 합창단 지휘를 맡았다. 부산교구 행사에서 우리 교당이 우승할 정도로 활발하게 참여했는데 이런 경험이 연극 연출에 도움이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혈기 왕성했던 학생들을 품어주셨던 스승님께 고마움을 느낀다. 당시 개인적으로 부산 흥사단 학생대표로도 활동했었다."

- 직접 본 영산성지는 어떤 곳인가.
"예전에 <택리지>를 공부한 적이 있다. 경상도 지형은 백두대간을 안고 서울을 향하고 있는데, 정읍, 고창, 영광 등의 지형은 돌아 앉아 있더라. 저항과 독립정신이 이런 지형적 특성에서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삼밭재 기세는 충격적이었다. 씩씩거리며 올랐는데, 도착하니 절벽 끝에 서 있는 느낌이 들더라. 우주의 중심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노루목 대각터 지세는 강한 기운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평야지역의 익산성지와는 사뭇 달랐다."

- <한국 현대희곡선>에 작품 '오구'가 선정됐다.
"최근 <한국 현대희곡선>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돼 화제를 모았다. 부제가 '유치진부터 이윤택까지'다. 한국 현대희곡의 시작을 알린 지 올해로 100년이 돼 이를 기념해 출판한 것이다. 이상우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20세기 연극의 경향은 물론 각 시기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선별했는데 내 작품 '오구-죽음의 형식'(1989)이 선정됐다. 내가 어렸을 적에 교과서에서 배웠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사실 하나만 해도 '아! 이제는 내가 죽어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새로운 작품을 하는 것도 누추하고, 후진양성이나 해야겠다고 마음 먹을 때 만난 작품이 소태산이다. 가장 높은 경지가 종교 아닌가. 원숙한 나이에 걸 맞는 작품을 만났다고 본다."
 
- 개인적인 삶이 궁금하다.
"육십대 중반이 되었으니 이 나이에 도전해볼 만한 작품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감히 말하자면 나는 어떻게 보면 '소태산 식'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나 역시 독학자로 제도권 교육과 달리 성장했다. 두 번째는 책을 엄청 빨리 읽는다. 열람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식이 있고 사유가 있으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비교하게 된다. 신문기자를 하면서 속독법을 배워서 그렇다.
세 번째는 시대를 사는 방법이다. 내 별명이 문화게릴라, 문화 무정부주의자다. 지금까지 13개 직장을 다니면서 글 쓰는 것을 놓지 않았다. 나 자신이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한전직원, 공무원, 기자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다.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황야에 자기 뿌리를 심는다. 이것이 소태산 식의 사유와 실천이다. 때문에 민중과 민초들의 대변자로 소태산을 주목해야 한다."

* 이윤택 연출가는 원기55년 대신교당에서 입교한 뒤 학생회원으로 활동했다. 1986년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해 부산 중구 광복동에 가마골소극장 문을 열었다. 1994년 우리극연구소를 설립했으며 현재는 영산대학교 CT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1999년에는 연극인 공동체인 밀양연극촌을 만들어 후진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산씻김' '오구' '바보각시' '청부' '비닐하우스' '문제적 인간, 연산' '햄릿' 등 수많은 작품을 연출했으며 대종상 각본상(1986,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서울연극제 연출상(1994, 길떠나는 가족), 백상예술대상 연출상(1999, 느낌, 극락같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한민국 뮤지컬 대상 연출상(2006, 화성에서 꿈꾸다) 등 각종 각본상과 연출상을 수차례 수상하는 등 문화예술계의 거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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