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그림 / 정은광, 동남풍값 15,000원
"자신의 운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되면 타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중국 한나라 유향(劉向)의 말이다. <그대가 오는 풍경>의 저자 정은광은 '지명자 불원천(知命者 不怨天) 지기자 불우인(知己者 不尤人)'를 실천해 온 원불교 교무로, 예술인이며 교육자의 삶을 살아왔다. 이번 작품은 <중앙일보>에 5년 동안 연재했던 '삶과 믿음' 칼럼을 엮은 것이다.

작품은 가장 멋진 삶은 맑게 정리가 돼 있는 사람의 삶이다/ 지혜가 있든 없든 잊을 건 잊는 사람이어야 맺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지만, 즐기는 자도 마음을 비우는 자만 못하다/ 내 삶이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 느껴도 열반과 해탈을 공부하는 기도인 것이다 등 4부로 구성돼 있다. 제목과 소주제에서 도드라진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향기'다. 그는 서로 죽는 날까지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신선한 물음과 따뜻한 문체로 백지를 흰 그늘로 그려냈다.

수채화가이기도 한 그는 편 편에 몽골초원, 러시아거리, 입 넓은 항아리, 섬진강 등 미술 작품을 일러스트로 쓰며 작품을 한 층 돋보이게 했다. 그가 작품 활동을 쉬지않는 현업 작가라는 사실은 산문과 어울린 그림에서 체감할 수 있다.

그의 생각과 공부 경지는 추천사를 통해 읽혀진다. 김도종 원광대학교 총장은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다양한 자아 성찰의 노력이 잔잔한 감동과 울림이 되어 내 마음에 들어온다. 지혜로운 인생의 발자취가 담겨있는 주옥같은 글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고 서술했다.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도 "그의 글을 읽으면 깊게 묻어놓았던, 그래서 잊은 지 오래된 순수함이 되살아나는 당혹감을 맛본다. 잠재된 수행에 대한 욕망을 일깨운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글이 간결하면서 해탈적인 요소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집을 나설 때는 반드시 옷장이나 쓰레기통을 다 비우고 책상서랍 볼펜 한 자루도 제자리에 놓고 떠나라. 도를 일구는 사람은 그 앉은 자리가 따뜻할 때까지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나그네임을 명심하라"- 습관성 집착 p130. 이 문구는 저자가 30년 전 대학시절 모셨던 스승에게 받은 법구다. 이 법문을 받들고 새긴 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습관이 되어버린 정리하고 비우는 버릇은 집착에 가까워졌다는 고백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수처작주(隨處作主). 그의 화두는 머무는 곳이 어디든 사람의 향기와 꽃을 피우는 일이다. 그리운 사람 하나 만나는 일을 하나의 우주로 받아들인 그는 헤어질 때는 마음에 섭섭함이 없는 공부를 당부한다. <그대가 오는 풍경>은 온전히 버려야 온전히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허공 꽃이 어지럽게 춤추는 허상의 세계에서 선시(禪詩) 같은 문구로 깨침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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