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의 발언은 피끓는 사자후다. 가슴은 평화지만 구호는 '반대'다. 마음은 뜨겁지만 입은 헛헛하다. 종교가 아니면, 공동체정신이 아니면 버텨낼 수가 없다. 어루만지지 않으면 금세 거칠어지기 때문이다. 성주의 하루들은 그렇게 지켜지고 있다.

지난주, 가장 날 선 성토 현장인 촛불집회에서 뜻밖의 은혜가 흘러넘쳤다. 마이크를 잡은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감사를 전했다. 연이은 집회로 1억 빚이 생겨 시작한 모금이 5일만에 12억을 넘긴 것이다. 도저히 마련할 방도가 없어 쭈볏쭈볏 SNS에 올린 사연이 손에 손을 타고, 기적을 이뤄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전했다. 원래 빚 3억 중 앞서 1억을 갚아준 이들이 현장 스탭들이었다. 무대를 설치하고 조명을 쏘고 음향을 조절하는, 집회 전날부터 끝나고 나서까지 꼬박 일하는, '공연계의 노가다'라 불리는 그들이 그 큰돈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장 가까이서 본 이들의 후원이 주는 감동과 가능성. 주최측은 그 힘으로 용기를 냈고, 국민들은 12억이라는 금액으로 화답했다.

지난 20회의 촛불집회 역시 자발적인 참여의 역사였다. 누적인원 1천6백만명이라는 규모는 누구 하나 강제한 이나 몇만원 알바비도 없이 순수하게 이뤄진 참여였다. 매주 가기도, 어쩌다 가기도, 그냥 한번 가보기도 했던 걸음이 결국 세상을 뒤짚었고 역사의 정도를 열었다.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삶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우리들은 그 추운 겨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고,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의와 희망, 이 흔해 보이는 두 단어가 1천6백만과 12억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 교단에 필요한 것도 역시 사람과 돈이다. 성지의 평화를 지키는데도, 치바법인같은 해묵은 적폐를 청산하는 것에도 사람과 돈은 필요하다. 정체된 교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아달라고 지시하는 총부, 교구나 이를 완수해야 하는 교당, 기관 현장들 모두 말떼기 어렵고 힘들다.

이런 때, 촛불집회의 기적에서 배우면 어떨까. 꼭 와라, 얼마 내라 라는 말 대신 정의와 희망을 말해보는 것이다. 교무가 교도들에게 성지수호와 한반도 평화의 정의를 얘기하고, 곧 사드가 물러가고 우리는 평화의 종교가 될 것이라 서로 독려하며 믿음을 주는 것이다.

성주 현장에 모이는 사람이나 돈도 큰 힘이 될터지만, 간절히 바라고 두터워진 정의와 희망이야말로 변화의 토대가 되고 바탕이 되는 근원이다. 자꾸 정의를 말하고 희망을 노래하자. 1천6백만과 12억, 기적은 가까이 있다. 누구든 진정한 정의와 희망엔 인색하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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