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만에 전통시장의 스타가 된 광주 '1913송정역시장' 성공요인은 청년상인, KTX역, 거리디자인으로 꼽힌다.
‘광주송정역’ 개명 후 비어있던 14개 점포 청년창업 터전 활용

창의적인 아이디어 실현·기존 점포와 조화, 재정비로 경쟁력

할 거리 보완과 젠트리피케이션, 지역 사회와 소통 과제



봄 들판을 채워가는 파릇파릇 새싹처럼, 청년들이 주인인 전통시장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뜨는 화제의 핫 플레이스이자, 누구나 가보고 싶은 잇(it) 플레이스 광주 1913송정역시장. 광주 여행을 왔다가 시장에 들르는 게 아니라, 시장을 보기 위해 광주를 찾는다. 최근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방문해 상인들의 손으로 호남의 민심을 읽은 것도 이곳이다.

예로부터 송정시장은 양동시장, 대인시장과 함께 광주 3대시장으로 꼽혔다. 광주의 서쪽 관문인 '송정리역'이 1913년에 문을 열어 오가는 걸음이 많았고, 자연히 '매일송정역전시장'이 형성됐다. 역앞은 경전선을 타고 내려온 철도객들을 위한 식당도 많았는데, 특히 떡갈비와 한식백반이 유명했다. 소태산 대종사도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대부분의 전통시장들처럼, 송정시장 역시 1990년대를 지나면서 쇠락했다. 이후 2004년 고속철도가 운행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역 이름은 '송정리역' 그대로였다. 지금의 역명 '광주송정역'은 2009년에 바뀌었는데, 지금의 1913송정역시장이 된 출발점이 됐다. 생기를 잃고 비어있는 점포와 길에 새 숨을 불러일으킨 것은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청년들로, 2016년 4월 재개장했다.

시작은 단순했다. 비어있던 14개의 점포를 기획서 심사를 통해 청년들에게 내준 것이다. 다만 전국의 많은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의 실패를 보며 1913송정역시장은 몇 가지 기준으로 세심히 추진됐다. 먼저 품목이 기존 가게와 겹치지 않아야 하며, 순수하게 청년으로부터 나온 독창적인 아이템일 것, 그리고 새로운 버전의 전통시장에 어울리는 기획일 것 등이다.

그렇게 들어선 가게 하나하나 면모가 쟁쟁하다. 잘난 가게 하나가 동네를 먹여살리는 입소문 빠른 세상, 이곳의 점포들은 SNS를 타고 일찌감치 대박이 예상됐다. 입구와 가까운 '역서사소'는 그 대표주자로, 듣도보도 못했던 '사투리 가게'가 컨셉트다.

'보고자퍼 죽겄땅께 시방 그짝으로 간다잉', '나으 가슴이 요로코롬 뛰어분디 어째쓰까', '니만 생각하믄 내맴이 겁나 거시기해'

엽서에 씌여진 이 문장들을 사람들은 몇 번이고 읽어본다. '겁나게 감사한 이 맴을 어찌고 다 말한다요'와 같은 축하 엽서도 있고, 지역을 넘어 경상도 버전, 물건너 제주도 버전도 있다. 엽서, 노트는 물론, '오~메 지비 낮짝 쪼까 반반하요' 장바구니, '아따', '긍께' 커플모자, '따수운삼월' 달력 등도 인기상품이다. 촌스럽게만 느껴지던 사투리를 우리의 문화로 인식시키고, 아날로그적 감성과 따뜻함을 더해 디자인한 결과물이다.
▲ 지방 사투리를 모티브로 소품을 만드는 ‘역서사소’.

익숙한 것의 변신도 있다. 양갱가게 '갱소년'은 양갱의 세계를 확장시켜 전통 먹거리를 현대화시킨 가게다. 40년 이상 양갱공장을 운영한 장인에게 비법을 전수받은 청년들이 생과일을 넣어 만든 양갱으로 웰빙간식의 지평을 넓혔다. 딸기와 블루베리, 파인애플, 호두, 우유, 녹차, 망고, 키위 등으로 만든 탁구공만한 색색의 양갱의 모양이나 맛이 생경하면서도 정겹다.

천원에 삼겹살 한점에 유기농야채 쌈, 마늘, 고추, 각종 소스까지 셀프로 먹을 수 있는 '우아한쌈'은 서울 명동의 길거리음식으로 나왔을 정도로 화제였다. 불판과 토치를 이용해 구워주는 고기로 한두점, 오백원짜리 잔술도 한두잔 하면 입도 즐겁고 손도 즐겁다. 이 밖에도 대충 때우는 끼니를 버젓한 상품으로 탄생시킨 '계란밥', 남도의 맛을 담은 도시락 '무등산 보리밥', 광주의 유명한 음식을 가져온 '상추튀김' 아침부터 줄 서서 사먹는 식빵전문점 '또아식빵', 보기만해도 배부른 삼겹살, 야채, 김치의 조합 '삼뚱이' 등이 1913송정역시장의 스타들이다.

이러한 독창적인 아이디어 외에도 1913송정역시장의 성공요인은 기존 상인들과의 조화에 있었다. 새 점포가 들어서는 한편, 역사 깊은 원래 점포들이 정리정돈과 간판교체를 통해 분위기를 바꿨다. 30년 전통의 태형식품이나 45년 넘은 현대식육점은 옛 사진을 가게 전면에 걸고 역사도 소개해, 예전 단골들에게는 향수를, 관광객들에겐 전통을 느끼게 했다. 옛 건물 입구에는 몇 년도에 지어졌으며 어떤 가게들이 있었는지도 설명해뒀다. 1982년에 지어져 '상태야채'로 문을 연 건물은, 2001년 '개미미용실'로 바뀌었다. 인간미 넘치는 설명도 붙어있다. "스무살에 서울로 상경해 종로 개미미용실에서 최신 미용기술을 배웠던 원장님의 머리 만지는 솜씨가 능수능란합니다." 개미미용실은 오늘도 성업 중이다.

이 밖에도 팝업스토어 '누구나 가게'는 평일 하루 1만원에 가게를 빌릴 수 있다. 자금이 모자라거나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싶은 청년들에게는 데뷔무대가 되어준다. 장을 보다 기차를 놓치지 않게 하는 시장 한 가운데 대합실도 있다. 골목 윗편 공간에 노란전구들을 달아 해지는 시각마다 따뜻한 장터 분위기를 연출, '1913송정역시장은 낮보다 밤'이라고도 한다.

▲ 시장의 터줏대감 '라의상실'에서는 사진 속의 사장님이 직접 나와 시장도 안내하고 제품도 판매한다.

1913송정역시장의 성적은 어떠할까. 작년4월 재개장 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하루 평균 550여명, 점포 매출액은 월 평균 580만원에 그쳤다. 그러나 6개월만에 방문객은 4배인 2000여명, 매출액은 2배인 1100여만원으로 조사됐고, 이후로도 계속 고공행진 중이다. 크게 '청년상인', 'KTX역사', '거리디자인'으로 꼽히는 1913송정역시장의 성공요인을 보기 위해 전국 지자체는 물론 외국에서도 견학을 온다. 특히 청년들이 일자리 부족으로 창업에 눈을 돌리고 있는 이 때, 1913송정역시장은 국가나 정부가 청년창업에 어떤 지원, 협력을 해야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전통시장계의 신예 1913송정역시장의 남은 과제는 뭘까. 점포들이 주로 먹거리 위주라 '할 꺼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5천원으로 흑백사진을 찍는 '서봄사진관'처럼 판매도 되고 체험도 되는 기획이 보완돼야 한다. 또한 새 상인들 때문에 가겟세가 올라가 기존상인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침구집과 한복집 등등이 그런 이유로 사라진 것이다.

지역과의 소통도 남아있다. 송정역에서 만난 광주토박이 최일주씨는 "광주 사람들의 시장이라기보다는, 외지 청년들이 들어와 만들어낸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다"며 "시장을 찾은 관광객들을 광주 시내 여행이나 지역 콘텐츠로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나씩 창의적이고 청년답게 접근해 나갈 일이다. 1년만에 유례없는 성공을 이끌어낸 1913송정역시장은, 도심 속 전통시장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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