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신 교도/일산교당
하대했던 내게 경외심으로 공 들여보기

100일 서원기도, 온전히 몰두하는 시간



60여년 전… 열다섯 살 아버지가 산동교당 근처 산에서 캔 작은 소나무 묘목을 남원교당 옛터인 금암봉 대각전 앞 화단에 심었다. 아무 연고자도 없는 고향에 가끔 여행 삼아 들르면 늘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그곳이었고 나는 슬쩍 이 소나무를 '아버지나무'라 이름 붙여서 부르곤 했다. 버스에 가지고 탈 정도로 작았던 아버지나무는 혼자 서기에 버거웠던지 버팀목에 일부 의지하고 있었지만 제법 탄탄하게 그곳에 뿌리내려졌고 자리를 아주 잘 잡아가고 있었다.

두 번째로 아버지는 35년 전 원불교라는 마음밭에 나와 우리가족을 심었다. 한글을 겨우 떼었을까 싶었던 작은 아이가 시간이 흘러 장성한 처녀가 되었다. 법맥이라는 훌륭한 물줄기를 받아 자란 나는 과연 탄탄하게 이곳에 뿌리가 내려지고 자리를 잡아갔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화두를 삼아보았으나 결론을 내려 보면 겉으로는 초록 잎이 무성한 건강한 나무지만 뿌리를 헤짚어 보면 곧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가는 잔뿌리들만 가득하지 않았나 싶다.

새해 첫날 답답함에 찾았던 지난 만덕산의 동선, 만가지 덕을 줄 테니 내게 오라는 무언의 음성에 무작정 가방 하나 둘러메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처음 원불교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배워 노래가사처럼 읊조렸던 경계. 그랬다. 인생에서 맞이한 가장 큰 마음경계가 내게 찾아왔다. 쉽사리 없어지지도 않았고 부수고 조각내어도 좀처럼 체에 걸러지지 않았다. 그로인해 수없이 일어나는 번뇌가 마장이 되고 끊임없이 항마하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구업을 짓지 않기로 했던 유념의 약속으로 매일 아침마다 두 시간씩 호숫가를 돌며 하늘과 호수와 나무와 풀에 토해내고 토해내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건만 순간의 시원함만 남을 뿐이었다. 꼴깍꼴깍 목을 타고 넘어가는 짜릿한 사이다처럼 속 시원히 뻥 뚫리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독대한 승산 종사님은 넌지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더냐'고 물으셨고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바루고 어룰 수 있는 대원정각을 하는 것이 그것이라는 나의 대답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그럼 네 마음은 어디 있느냐' 재차 물으셨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우물쭈물 답을 찾는 사이 '너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네가 원하는 답은 그 안에 다 들어있을 것이다' 라는 약간은 모호한 현답을 받아보게 됐다.

그 마음이라는 놈이 당초 어디에 있는 것인지 옷 속을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고 거울을 바라봐도 보이지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할 노릇이었다. 찾지 못하는 그와 이리저리 숨바꼭질을 하다 멈춘 사이 언뜻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여기에 오기 전부터 나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답을 미리 알고 있었다. 스스로를 괴롭게 했던 것들은 상대처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었고 내상으로 깊은 상처를 갖게 되었다는 생각 또한 나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종교생활에 대한 회의를 느껴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었던 이 절망의 순간이 오히려 아버지가 나를 인도한 본래의 참 의미에 대해 알게 되는 반전의 계기가 되어버렸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큰 쉼표 하나를 찍고 있다. 맨몸뚱이 하나로 버티는 하루하루 그래도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살아볼 만하다는 스승님의 가르치심을 수없이 되뇌어본다. 나를 에워싼 모든 것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가장 하대했던 내게 경외심을 가지고 공을 들여보기 위해 처음으로 100일 서원기도를 시작했다. 서툴고 많이 부족하지만 진정으로 나를 위해 온전히 몰두하는 이 시간을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기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 있다. 비록 교당이 사라져도 금암봉 자락에 꿋꿋하게 변함없이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아버지나무처럼 원불교의 2세기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인생의 남은시간 모진 추위에도 지조와 절개로써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같이 올곧은 신심의 재가로 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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