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은경 교무/광주교당
벚꽃이 만개한 봄이다. 매번 오는 봄이 무뎌질 만도 한데 나는 늘 봄이 설렌다. '더그 라슨'이라는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봄이란 설사 눈 녹은 진창물에 발이 빠졌다하더라도 휘파람을 불고 싶은 때이다." 나 역시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겨우내 웅크렸던 어깨가 펴지면서 무언가 새 다짐이 생기고 열정이 솟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봄이란 그런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고 도약하는 시기를 맞고 얼었던 세상에 변화가 오는 때다. 바로 봄이 주는 훈훈함, 그 바람을 소태산 대종사는 동남풍이라고 했다. "도덕은 곧 동남풍이요 법률은 곧 서북풍이라, 이 두 바람이 한 가지 세상을 다스리는 강령이 되는 바, 서북풍은 상벌을 주재하는 법률가에서 담당하였거니와 동남풍은 교화를 주재하는 도가에서 직접 담당하였나니, 그대들은 마땅히 동남풍 불리는 법을 잘 배워서 천지의 상생 상화(相生相和)하는 도를 널리 실행하여야 할 것이니라. -중략-" (<대종경> 교의품 37장)

얼마 전 한 교도가 나를 부르더니 마당 한 편에 자리 잡은 나무를 가리키며 "아니 세상에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 봄이 되니 새싹이 돋는다" 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정말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 틈새에 푸른 잎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 순간 봄기운에 나무가 살아나듯, 훈훈한 동남풍이 모든 생령을 살려준다는 법문이 틀림이 없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웠던 것 같다. 주말이면 촛불시위에 전국이 들썩이고, 매일 일어나는 청문회에 모두의 마음이 매서운 눈보라처럼 차가웠다. 나 또한 처음 광주로 부임해서 현장에 적응하며 여유 있는 마음보다는 긴장 속에 얼어있는 마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유독 올 봄이 더 반갑다. 봄이 되면서 세상은 더 큰 변화가 생겼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대통령을 선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추운 바닷속에 묻혀있었던 세월호가 인양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꽁꽁 얼어있던 모두의 마음이 그 순간 조금은 녹아나지 않았을까.

아직은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지만, 추운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오듯이 곧 모두의 마음에 깊이 자리한 동남풍의 바람이 불어오면 평화로운 상생의 나라가 다시 오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성자의 법문이 주는 힘인 것 같다.

누군가에겐 그냥 흘러가는 봄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겐 특별하다. 날카로운 서북풍이 사회에 정의를 바로 세우고, 얽혀있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듯, 나의 서원은 동남풍 불리는 법으로 상생상화의 길을 열어 가는 것이다. 원불교 교도로서 동남풍을 불리는 법, 지친 세상에 도덕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항상 내 마음에 봄과 같은 따뜻한 기운이 돌아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고 내가 머무는 곳에 상생상화의 도가 살아난다면 이것이 바로 대종사님이 전해준 동남풍을 불리는 법이 아닐까 한다. 이 봄, 나,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도덕의 바람 동남풍을 쉼 없이 일으켜 늘 따스함이 전해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