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부처님은 신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마음공부는 도의 이치를 아는 것



有沙門이 問佛호대 以何緣得道하며 奈何知宿命이니꼬. 佛言- 道無形相이니 要當守志淨心하야 譬如磨鏡에 垢去明存하면 卽見道眞하며 知宿命矣니라.

한 제자 있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어떠한 인연으로써 도를 얻으며 또 어떻게 하여야 전생 일을 알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도는 현묘하여 범상한 생각으로써 가히 알지 못할지니 오직 뜻을 지켜 마음이 청정한 후에야 가히 도를 얻을 것이요, 따라서 전생 일을 알게 될지라. 비유컨대 거울에 있는 때만 닦아 버리면 스스로 밝은 빛이 나타나는 것과 같나니라."


〈사십이장경〉 13장의 말씀은 어떤 인연으로 도를 얻을 수 있으며, 전생일(宿命)을 알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제자의 질문에 부처님께서 답한 것이다. 도는 형상이 없는 것이기에 뜻을 지키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공부를 하면 전생일은 자연히 알게되는 것이 마치 거울의 때를 닦으면 사물을 잘 비추게 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다.

도무형상(道無形相)이라, 도라는 것은 형상이 없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도'라는 것은 '깨달음', '열반'등의 뜻으로 깨닫게 되면 우주의 진리와 인생의 이치를 알게되고 우리의 본래 성품자리는 부처님의 그것과 한치의 다름도 없이 같기 때문에 누구든지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는 정해진 형상이 없다. 마치 물이 정해진 모양이 없이 물을 담는 그릇의 형태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도'도 일정한 틀이나 고정된 모양이 없이 자유자재하여 어느곳 어느때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수지정심(守志淨心)이란 뜻을 지켜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말씀이다. 부처님과 호리도 틀림없는 성품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왜 부처님과 같은 삶을 살지 못하고 늘 욕심으로 인한 고통속에서 살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번뇌망상의 때(垢)가 우리의 참되고 온전한 성품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공부를 통해서 성품을 덮고 있는 이 때만 제거한다면 맑고 밝은 성품의 광명이 발하여 부처님과 다름없는 지견을 얻게 된다.

숙명통(宿命通)이란 숙명지통(宿命智通)이라고도 하는데, 자기나 다른 사람의 지나간 세상에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자유자재로 훤히 다 아는 신통력을 말한다. 신통력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과거의 한세상, 두세상 또는 천만세상을 훤히 알게 되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전생 일을 아는 것과 같은 신통을 중요한 일로 생각지 않으셨다. 그러나 신통을 얻는 것에 마음이 끌린 제자를 꾸짖기 보다는 차분히 공부의 순서를 알려주신 것이다. 즉, 전생일을 아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하기 보다는 마음공부를 잘 하면 도의 이치를 알아 자연스럽게 전생의 일도 알게 되는 것이지 전생만을 알려고 공부하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는다는 간곡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쉼없이 거울에 때가 끼이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작물이 잘 자라는 좋은 밭은 본래 풀도 또한 잘 자라지만 그 주인이 부지런히 풀을 뽑아 밭을 묵히지 않고 관리하기 때문인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사심 잡념이 생길 때마다 정성껏 챙기고 또 챙겨 잡념을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수행법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신통은 신비한 자취로 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과거 부처님 당시에도 십대제자중 목건련존자를 신통제일이라 했고, 오랜 기간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설화의 거의 대부분도 또한 신통에 관한 내용이며, 기독교 등 서양종교를 물론하고 근세 민족종교 중에서도 한때이기는 하지만 신통을 통해 교세를 확장한 종교도 있었다.

원불교는 왜 신통을 경계 하는 것일까?

먼저 인도상요법(人道上要法)을 위주로 한 공부를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선천시대에는 고요한 산중에서 공부하고, 이산도수(移山渡水)와 호풍환우(呼風喚雨)등 신통을 부릴 줄 알아야 도인이라 했지만, 그에 비해 원불교의 공부는 현실을 떠나지 않고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 공부를 통해 복과 지혜를 얻는 공부를 하도록 가르치셨다.

교단 초기부터 정기훈련 기간에 수양공부인 염불과 좌선만 가르치지 않으시고 경전·강연·회화 등 정기훈련 11과목을 골고루 가르쳐 수양, 연구, 취사의 삼학공부를 통해 한편에 편중된 인물 보다는 원만한 인격을 갖춘 수도인이 되도록 가르치셨다.

또한 과거에는 무지하여서 일과 이치, 선후와 차서를 모르고 자연 현상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몰랐지만 지금은 과학이 발달하여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많은 사실들이 차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정산종사께서는 '과학이 곧 신통'이라 하셨다.(〈정산종사법어〉 응기편 28장)

대종사가 〈사십이장경〉을 〈불조요경〉의 한 경문으로 선택한 것은 우리 교리와 상당부분 중첩되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었다. 13장의 법문도 당시 신흥종교들에서 보여지는 신통을 중시하는 풍토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러한 잘못된 공부에 휩쓸리지 않도록 경계하신 내용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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