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머리를 빗다가 우연히 햇빛에 비친 빗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빗살 틈 사이로 먼지 떼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이다. 원효대사가 어두운 동굴에서 물을 찾다가 해골물로 갈증을 해소 했듯이 나 역시 이 먼지 가득한 빗으로 매일 머리를 빗고 있었던 것이다. 원효대사는 이를 계기로 일체유심조를 깨우쳤지만, 나는 이를 계기로 그동안 작은 것 하나도 세심히 살피지 못한 나의 게으름에 반성을 하고 빗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헌 칫솔을 들고 빗살 사이사이를 문지르며 때를 벗겨 냈다. 촘촘한 빗살 사이사이에 먼지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아~ 업이란 이런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빗살 틈에 겹겹이 쌓인 먼지들처럼 나에게 쌓인 업들은 얼마큼일까. 이 먼지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업들이 나의 구석구석에 쌓여 있을 것인데 이 또한 내가 보지 못하고 그냥 저냥 살아가고 있구나"게으름과 어리석음으로 놓쳐버린 빗살 틈처럼 나도 공부심을 많이 놓치고 살고 있었다. 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심신활동, 즉 육근동작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행하는 것. 그래서 업은 '짓는다'라고 한다.
업에는 선업과 악업이 있는데 선업을 많이 지으면 복이 오고, 악업을 지으면 죄와 고통이 따른다. 이처럼 업은 곧 인과로 이어진다. 더러운 빗으로 머리를 빗은 즉 그 먼지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내 두피에 옮겨 붙을 것이고, 이는 모발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쳐서 두피가 상하고 머릿결이 손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매일 빗을 살펴서 먼지가 쌓일 때마다 먼지를 제거하고 그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두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매일 순간순간 이렇게 살필 필요가 있다. 찰나에 나의 육근이 작용하고 마음이 작용하여 선업이든 악업이든 수많은 업을 짓고 살아가고 있는데, 늘 내가 지은 그 업에 허덕이며 후회하고, 반성하는 삶을 반복한다면 사는 게 얼마나 지치고 힘이 들까.

정산종사는 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다. "정업을 면치 못한다 함은, 이미 정해진 업에 대하여는 죄복을 주는 권능이 상대방에 있기 때문에 한 번 결정된 업은 면할 도리가 없이 받게 된다는 말씀이요, 천업을 돌파한다 함은, 그렇게 주어지는 업이라도 받는 이는 곧 자신이기 때문에 마음의 자유를 얻은 이는 그 죄복에 마음이 구애되지 아니하고 항상 그 마음이 편안하므로 곧 그 업을 자유로 함이니 이것이 천업을 돌파함이니라." (〈정산종사법어〉 생사편 3장)

쌓이는 먼지를 어찌할 수는 없다. 방에 있는 모든 문과 틈을 봉쇄하더라도 먼지는 생긴다. 즉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는 업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매일 살피고 닦으면 먼지는 사라지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늘 살피고 닦아 업을 짓는 것에 자유 한다면 죄와 복에 구애받지 않고 업을 초월하는 삶을 살 것이다.

이제 나는 머리를 빗을 때마다 빗살 틈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늘 내 마음과 대조를 해본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떠한 업을 어떻게 지어나가고 있는지 놓치지 않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업을 자유로 하는 내가 되리라 기대해본다.

/광주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