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삼독오욕을 끊으려면 성품의 이치를 깨쳐라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곳이 불국토


佛言- 人懷愛欲하야 不見道는 譬如濁水에 以五彩로 投其中하야 致力攪之하면 衆人이 共臨水上이라도 無能覩其影者니 愛欲交錯하야 心中爲濁이 故不見道요. 猛火著釜下하면 中水湧躍하야 以布覆上하야 衆生이 照臨하여도 亦無覩其影者니 心中에 本有三毒하야 湧沸在內하고 五蓋覆外하야 終不見道니라. 若人이 來近知識하야 惡心垢盡하면 乃知魂靈所從來와 生死所趣向과 諸佛國土道德所在耳리라.

"부처님 말씀하시되 사람이 애착과 탐욕을 품어 도를 보지 못하는 것은 비컨대 탁한 물 가운데 다섯 가지 물감을 풀어 힘대로 저어 놓으면 비록 사람이 그 물 위에 다다를지라도 능히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나니 사람도 애착과 욕심이 서로 얽혀서 마음이 맑지 못한 고로 또한 도를 보지 못하나니라. 또는 가마솥에 물을 붓고 불로써 끓이고 보면 그 물이 펄펄 뛰어 비록 사람이 그 물을 들여다볼지라도 또한 그림자가 보이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마음 가운데에도 본래 삼독이 있어서 항상 펄펄 끓고 또는 다섯 가지 욕심이 밖을 덮어 마침내 도를 보지 못하나니라. 그러나 사람이 만일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 안으로 삼독심을 끊어 버리고 밖으로 오욕 경계에 물들지 아니하여 마음만 청정히 하고 보면 곧 도를 보아 혼령의 소종래와 만물의 죽고 나는 이치와 제불국토를 다 알으리라."


<사십이장경> 16장의 말씀은 애착과 탐욕, 삼독과 오욕이 있으면 도를 볼 수 없지만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 마음을 청정히 하면 도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이다. 깨끗한 물은 사람을 비출 수 있지만 물감을 풀어 놓은 물이나 펄펄 끓고 있는 물은 사람을 비출 수 없듯이, 본성을 지키지 못하고 애착과 탐욕, 삼독심과 오욕을 벗어버리지 못한 사람은 진리를 알 수 없다. 진리를 알아가려면 바른 스승의 지도를 따라 죄업의 근본인 심중의 탐·진·치를 끊고 오욕의 경계를 벗어 자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 참 마음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고, 만물의 태어나고 죽는 이치를 알 수 있으며, 부처님의 나라에는 도덕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삼독심이란 탐심(貪心)ㆍ진심(瞋心)ㆍ치심(癡心)의 세 가지 번뇌를 말한다. 탐심이란 오욕 경계에 물들어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마음을, 진심이란 화를 잘 내는 마음을, 치심이란 사리에 어두워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바보같은 마음을 말한다.


오개의 개(蓋)는 덮다라는 뜻이다. 즉, 본래 맑고 깨끗한 성품을 덮어 사물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다섯가지 장애물이라는 의미로 오욕을 의미한다. 오욕이란 중생심을 가진 인간이 갖고 있는 다섯 가지 욕망으로 사람이 현실의 삶 속에서 누리는 즐거움으로 세간락(世間樂)이라고도 한다. 식욕, 색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을 말한다. 대개 하근기는 오욕 중 식욕ㆍ색욕ㆍ재욕ㆍ수면욕이 주된 경계가 되고, 명예욕은 중근기의 병증이라 할 수 있다.

삼독오욕을 완전히 끊는 길은 결국 성품의 이치를 깨쳐야 가능하다. 근원을 녹이지 못하면 일시적으로 제거된 것처럼 보이지만 경계를 당하면 다시 고개를 든다. 애착과 탐욕에 대한 욕망도 온 힘을 다해서 참으면 참을 수 있겠지만 한순간 방심에 되면 결국 경계에 넘어가고 만다. 즉, 견성을 못하면 애욕과 탐착의 근원을 알지 못해 늘 죄고의 그늘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반면 홍로점설(紅爐點雪:붉은 화로에 떨어지는 눈)이란 말처럼 견성 한 사람은 번뇌망상이 일어나더라도 본래 성품자리에 비춰보면 붉은 화로에 눈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삼독오욕이 녹아 버린다.

혼령의 소종래를 안다는 것은 나의 영혼이 과거 다생으로부터 어떤 일을 통해서 현재의 내가 있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이며, 만물의 나고 죽는 이치를 안다는 것은 범부 중생은 생명이 끊어지면 영원히 끝나는 것으로 알아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견성한 사람은 죽고 나는 것을 변화로 알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없다. 마치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고,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도 같이 죽음의 실체가 변화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나라에는 도덕이 있을 뿐이라는 뜻은 부처님이 살고 있는 나라는 부처님의 이상이 실현된 국토로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곳을 의미한다. 즉,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곳이면 그곳이 바로 불국토인 것이다.

정산종사는 탐·진·치 삼독을 제거하는 공부의 경로에 대해서 말씀했다. "보통 사람들은 탐·진·치에 잠겨 살면서도 탐·진·치의 생활을 하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비로소 탐·진·치가 있는 줄을 알고 이를 제거하기에 힘써 가는데, 처음에는 한 시간 걸리던 것이 차츰 줄어들어 한 순간에 마치고, 마침내는 탐·진·치가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나니 (중략) 그러나, 우주의 청명한 날씨도 흐릴 때가 있는 것과 같이 부처의 경지에도 역시 이러한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에는 부처님도 공부를 해야 하거늘 하물며 범부들이 공부를 게을리 해서야 되겠느냐?"(<한울안한이치> 3.일원의 진리.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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