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헌 기자
갑자기 영화 '베를린'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그 놈은 새벽4시 넘어야 와. 소련 비밀경찰이 사람들을 체포하던 시간. 그 시간에 인간이 가장 나약해지거든." 표종수(하정우)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있던 동명수(류승범)가 공조범에게 했던 말이다.

4월26일 새벽2시. 사람이 가장 취약한 시간대에 대한민국 경찰은 80개 중대를 풀어 소성리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점거했다. 성주성지 종합상황실은 물론 노인들만 사는 집집마다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틀어막았다. 일부 소성리 주민들과 원로교무들이 마지막까지 길목을 지키겠다고 일원상서원문에 의지하며 기도를 올린 그 순간에도 경찰들은 한 사람씩 끌어내렸고, 길목을 막아놓았던 차량은 모두 유리창을 부수고 견인시켜 버렸다.

훈련받은 경찰병력 8천여 명과 노약자·종교인 백여 명의 싸움. 새벽에 무심히 열어본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보고 소성리로 다급히 달려갔지만 상황은 모두 끝난 뒤였다. 젊은 교무들과 교도들은 안간힘을 다해 맞서다가 쓰러져 20~30분 한참 거리에 나뒹굴다가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대체 어느 나라에서 노인들과 종교인을 대상으로 이런 기습작전을 펼친단 말인가. 사람들은 적어도 하루종일 정신적 외상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사드장비가 진밭재를 지났다는 소식은 각종 매체들 덕에 이미 세상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날 밤 누가 울고 통곡했는지, 공권력이란 압도적 힘 앞에 얼마나 뼈져린 무력감에 치를 떨었는지, 막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우울함으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느낌까지 말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싸움 앞에서 발만 동동 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은 마치 3년 전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마저 떠오른다.

총부에서 열린 원기102년 대각개교절 경축식에는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내 내빈이 참석했다. 사드배치 결정은 차기 정부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사드찬성을 당론으로 정하겠다는 국민의당, 사드를 찬성한다는 자유한국당까지.

"이 성지를 지키고자 우리 신부님이 미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미사가 다 끝나기 전에 들어와서 제구를 치워버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치인들 앞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할 말을 했던 김희중 대주교 축사는 시원하다 못해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리 할매들이 소성리 길목을 지키다가 강제로 끌려내려왔다는 억울한 심정을 대변해 준 것 같아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 교무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기도가 다 끝나기도 전에 들어와서 목탁을 빼앗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고 말하지 못했나.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