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봉공회 40주년
헌신은 교단발전 주춧돌

교당 살림과 대사회 봉사활동으로 원불교를 세상에 알리고 있는 봉공회가 40주년을 맞았다. 봉공회원들은 교당교화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줬을 뿐 아니라 '일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일하는 이사병행의 신앙인 상'을 만들어 왔다. 봉공은 <정전> 사대강령 중 무아봉공(無我奉公)에서 유래한 말이다. 봉공의 전제가 무아인 셈이다. 이는 창생을 위해 기도했던 소태산 대종사와 구인선진들의 사무여한(死無餘恨) 정신과도 궤를 같이 한다.

봉공회는 대종사 창교의 법맥을 이으며 시작됐다. 조직으로 보면 원기54년 대산종법사가 4대 봉공회 법문을 내리면서다. 교당 봉공회가 활동은 했지만 조직화되지 못하다가 이때 조직구성에 탄력을 받게 된 셈이다. 하지만 실제적인 활동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가까웠던 봉공회가 오늘날의 조직으로 성장한 계기는 원기62년(1977) 3월 중앙교의회 의결을 거쳐 발족하면서부터다.

원기62년 교구제가 시행되면서 교당 봉공회원들이 대사회적인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게 된다. 그 다음해에 교구봉공회가 조직돼 봉공기금 마련 바자, 농아원 양육비 보조, 위문공연 및 위문품 전달, 벽지 분교 서울초청, 의료봉사 등 전방위적으로 대사회활동이 확산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앙봉공회 실체적 조직으로 거듭난 것은 원기73년(1988) 임시수위단회에서 봉공회 규정을 제정한 뒤 김윤중 교정원장이 중앙봉공회장으로 부임하면서다. 원기74년 봉공회관(이리시 중앙동 소재) 건립을 착수하고, 이듬해 봉불낙성식을 가지면서 조직이 실체화됐다. 지하1층 지상5층 건물의 중앙봉공회관은 봉공회의 구심점이었다. 이때부터 봉공회가 종교의 역할을 다하는 선봉장이 되면서 20개 교구 봉공회가 설립되고, 거의 모든 교당에 봉공회가 생겨나게 됐다. 고문국 봉공회장(2대)을 거쳐 서울교구 봉공회에서 실질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김혜전 교도가 3대 봉공회장으로 취임(1997)하면서 활동은 확연히 바뀐다. 봉공활동을 보다 조직적으로 하기 위해 정부 시책에 맞춰 사회복지법인 원봉공회를 만들었고, 당시 IMF 외환위기로 인한 실직자와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 활동을 펼치는 등 대사회적인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3대 봉공회장이 취임하면서 중앙봉공회의 키가 서울로 옮겨졌다. 중앙봉공회는 노숙인을 위한 쉼터와 무료급식, 은혜의 살림터(모자쉼터)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했고, 연천 수해복구 활동, 독거노인 지원 사업과 장판도배 등 봉사의 다변화를 꾀했다. 4대 김미진 봉공회장이 취임한 후에도 강원도 산불 구호물품 지원, 원봉공회 CMS 모금, 인도네시아 지진구호, 태안 기름유출 자원봉사 및 지원활동(114일간), 중국 쓰촨성 지진 구호, 아이티 지진 구호, 아프리카 담요보내기 등 활동의 폭을 넓혔다.

5대 오예원 봉공회장이 취임한 뒤에는 급식차량인 '사랑해 빨간밥차' 운영을 비롯해 서울역 노숙인 쉼터 은혜원룸 수탁 운영, 은혜의 김치 나눔, 결혼이주여성과 나눔, 세월호 사고로 인한 세탁봉사 및 무료급식 지원, 부산울산교구 봉공회관 건립, 다문화 작은 결혼식, 세계봉공재단 출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다.

교당 봉공회원들은 사실 숨은 조력자가 아니라 교화의 주인공들이다. 어떤 교도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하고, 자신의 시간과 헌신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봉공회원들은 교당의 주축일 수밖에 없다. 오예원 봉공회장은 "실적이나 물질적인 성과를 내는 사람만 모시는 교단 풍토는 개선돼야 한다"며 "정신적 육체적 봉사활동을 하는 봉공회원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어쩌면 교단의 성장은 이들 무명의 헌신(교도)이 일궈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8.15 해방 후 전재동포구호사업을 비롯해 6.25전쟁 고아 수용(서울보아원), 태안 기름유출 자원봉사, 쓰촨성 지진 구호 등 큰 산맥 같은 대형봉사가 있는가 하면 교당의 일상을 책임지는 봉사 등 봉공회의 활동은 다채롭다. 이같은 대사회 활동은 2008년 국토해양부장관상, 태안봉사활동 대통령상, 2017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결국 봉공회 활동은 교단을 이끄는 힘이다.


봉공회 역사

원기 원년 소태산 대종사의 무아봉공 천명
원기30년
(1945)
전재동포구호사업
원기35년
(1950)
6.25전쟁 고아, 서울보아원 운영
원기54년
(1969)
대산종사 4대 봉공회 법문
원기62년
(1977)
중앙교의회 봉공회 설립 의결
원기75년
(1990)
익산시 중앙봉공회관 봉불
원기82년
(1997)
제3대 김혜전 회장 취임
서울시대 개막
원기83년
(1998)
IMF 외환위기
실직자 노숙인 무료급식
원기87년
(2002)
제4대 김미진 회장 취임, 
원봉공회 CMS 시작(원기90년)
원기92년
(2007)
원불교 봉공회 30주년 기념대회
원기93년
(2008)
태안 기름유출 114일간 자원봉사
원기95년
(2010) 이후
제5대 오예원 회장 취임
서울역 노숙인 쉼터 은혜원룸 운영
사랑해 빨간밥차 수탁 무료배급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