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역사와 문화 복원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포천 토박이로 공무원 정년 퇴직 후 인생2막

열반 후에나 공개될 숨은 이야기 찾아내는 연구



태어나고 자란 고향,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와 독립하는 것이 일반적인 요즘, 고향과 가족을 지키며 살아온 일생은 얼마나 귀하고 향기로운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윽해지는 향기를 풍겨내는 포천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최창근(법명 현암·75·포천교당)소장과 마주했다.

"본관은 충주인데, 조선 개국 즈음 당시 진사셨던 최하손 선진이 포천에 뿌리내렸습니다. 그로부터 제가 19대, 우리 손자가 21대예요. 몇 백년을 거쳐온 포천 토박이지요."

토박이에게 듣는 포천 이야기는 어떨까. 예로부터 군사요충지로 적합해 모든 왕조가 탐냈던 지역, 백제부터 시작하여 자고 나면 나라가 바뀌고 지도자가 바뀌어 있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바로 경기도 포천이다.

"그러다보니 민심이 좀 각박한 측면이 있죠. 남을 잘 믿지 못하고 텃세도 있고요. 경기 북부 중에서도 특히 포천과 파주가 유난히 배타적이고 보수적이거든요. 역대 선거처럼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그 고장 사람, 토박이는 귀하게 쳐주는 곳이 바로 포천이며 유난히 인물 많은 곳도 포천이다. 사육신 중 하나인 유응부가 이 곳 사람이며, 조선 말기 애국지사인 최익현도 여기서 났다. 포천 지역이나 인물 강의를 할 때면 그가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인물은 오성과 한음으로, 경기도 포천의 마스코트이자 가장 스토리텔링이 많이 되는 듀오다.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 몸소 나섰던 인물이 많아서 포천 앞에는 늘 '충절의 고장'이라는 설명이 붙어요. 포천교당이 있는 도로 이름도 호국로지요."

이 고장에서 그는 중농집안의 5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5대조 선친은 2~3만 평의 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가 실제로 물려받은 땅은 7~8천평. 먹고 살만했지만 9살 때 한국전쟁이 터졌다. 포천은 남북의 길목 중 하나라 군사적으로 예민했고, 그 때문에 수복이 늦어 학교도 뒤늦게 들어갔다. 군대 제대 후에는 체신청을 거쳐 면사무소에 재직, 20년 동안 면사무소에 있으면서 부면장까지 지냈다. 이후 포천군청 공무원으로 11년 근무, 5급 사무관으로 퇴직한 것이 원기83년이다. 58세 더도덜도 아닌 딱 정년에 퇴임한 그, 그러나 퇴직 후의 삶은 더욱 바빴다.

"은퇴 후, 퇴직공무원모임에서도 4년 근무했고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포천시협의회 사무국장으로 10년을 지냈습니다. 공무원으로 퇴직하는 게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고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랬더니 고맙게도 부르는 곳이 많았습니다."

교회며 절, 향교 등 여러 종교를 두루 섭렵했던 그가 원불교를 만난 것도 민평통 시절이었다. 어느 날 집 앞 골목을 청소하는 전중원 교무를 만난 것.

"원불교가 언제 포천에 들어왔냐고 여쭈니 아직 안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명함을 드리니, 법회를 보려는데 사람이 없다고 곧 연락이 왔어요. 처음 전화하셨을 때 못 갔고, 두 번째도 바빠서 못 갔고 세 번만에 갔더니 참 아늑하고 좋았습니다."

초년기도 청년기도 중년기도 아닌 은퇴 후 인생2막에 만난 포천교당. 교화가 어려운 지역으로 손꼽히는 포천 토박이면서도 원불교를 알았던 것은 아들이 원광대학교를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포천교당 창립멤버 5인 중 하나가 된 그는 10년 넘게 교도부회장을 맡고 있다.

"70대에 접어들어서는 신앙수행하고 우리 교당 교화를 위한 한문교실이나 붓글씨교실 등 하며 쉬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포천문화원에서 향토사연구소장직을 맡기더라고요. 지난해 30년 기념행사를 치른 유서깊은 곳인데, 지역의 역사와 문화, 숨은 이야기들을 복원하고 자료화하는 곳이라 쉽지 않은 자리였죠."

그런 자리에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는 근현대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자료가 될 만한 이들을 조사위원으로 위촉하는 한편,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굳게 닫힌 입을 여는 데 직접 뛰고 있다.
"대진대학교와 함께 녹취해 자료로 남기는데, 열반 뒤에나 세상에 공개해달라는 증언들도 많아요. 특히 한국전쟁 때는 몰래 이웃을 고발하거나, 낮에는 한국군, 밤에는 북한군이었던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노근리처럼 한 마을이 몰살됐으나 기록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한 글자 한 글자가 다 역사고 기록인 작업. 언제 세상에 나올지 모를 예민한 자료를 남기면서 그는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보람을 얻고 있다.

"올해는 특히 포천 장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전통시장 골목 국밥집이야기, 출처 없이 전해 내려오는 민담, 소문들을 한데 모으면 포천 지역의 향토성, 지역성을 복원하고 지켜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70대 중반에도 포천시 노인회 감사, 서울시대상을 받은 바 있는 서각작가로도 활동하는 만년 청년 최창근 향토사연구소장. 지역이 낳고 키운 이가 더듬어 밝혀내는 포천의 역사와 문화, 날로 지혜와 연륜이 더해지는 그의 오랜 현역 활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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