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병과 죽음 등 인간의 한계상황을 비롯하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해소하고 안심을 얻기 위해, 진리를 우러러 구제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원초적 심성이다. 부처님, 하느님, 알라 등은 이러한 우리의 바람을 받아주는 이웃종교의 신앙 대상들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원불교의 신앙은 종교 신앙사에서 볼 때, 획기적인 전환점을 드러내고 있다.

핵심은 일원상을 신앙하는 것이다. 소태산은 이를 원만한 신앙, 사실적 신앙이라고 밝혀주었다. 그 이유는 일원이 곧 사은이며, 사은은 우주의 실제로서 이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불성 아님이 없기 때문이다.

진리불공과 실지불공은 신앙사의 종합과 핵심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우리 인류의 신앙사가 보여주듯이 진화된 모든 종교가 도달하고자 하는 신앙 세계를 말한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이나, 불교에서 부처님이나, 이슬람에서 알라의 모습을 어떤 고정된 특정한 모습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떤 종교의 신자도 진리 모습을 그리라고 한다면 그 신자의 수만큼이나 다를 것이다. 결국 우리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그 최고의 진리 세계를 자신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가장 진화된 종교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의 신앙 대상은 방편이거나 상징인 것이다. 불상에 대한 신앙도 결국은 진리를 깨달은 분을 존경하고, 가르침을 따라 성불제중의 서원을 세워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불상이 살아계신 부처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 의식이 진화했다.

원불교 또한 초창기에는 음부, 천지신명, 허공법계 등의 말을 통해 진리세계를 표출했다. 이는 도교, 유교, 불교의 진리적 세계관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일원상의 신앙에 이르게 됐다. 교단 초창기에는 널리 알려진 신앙 대상을 사용했고, 그 과정을 거쳐 마침내 진리 그 자체를 상징화한 일원상의 신앙이 탄생했다.

일원상은 말씀 그대로 부처님의 심체인 심불이다. 그리고 심불은 불성이며,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천지만물 허공법계이다. 이에 따라 신앙 개념도 변화됐다. 진리에 대한 신앙은 물론 우주만유 전체를 신앙하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도 천지자연 모두가 불성을 가진 부처님으로 보는 본각(本覺)적인 세계관이 존재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부처로서의 그 실제적 권능을 인정한 것이다. 실존철학자 사르트르야말로 이 점을 서양 계시종교의 전통 속에서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굳이 우리가 신의 중재 없이도 인간끼리의 소통이 가능하지 않은가"라고 설파했다. 그렇다고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을 무시할 수 없으며, 여전히 신앙의 한 축으로 간직하고 있다.

인류의 지혜가 발전되면서 불공의 주체는 자신이며, 나 외의 존재 또한 부처로서 불공의 대상임을 알게 되었다. 상대에 따라 인과와 죄복의 근원에 입각해 불공하자는 것이 원불교 실지불공이다. 신앙의 궁극은 변하지 않았지만, 방법이 확장된 것이다. 공부를 통해 부처는 알았더라도 그 공부가 삶의 궁극적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방법의 적극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수행과 신앙이 일치되는 지점, 그것이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가르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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