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세먼지는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 국가가 아닌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생존의 문제다. 사진=환경정의 제공.
문재인 정부와 서울시의 잇단 해결 의지와 대책 발표

미세먼지 재난 규정, 자동차2부제, 대중교통 무료이용 등



보기 드물게 맑은 날씨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미세먼지 대토론회가 열리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지 모처럼 구보씨 기분도 맑다.

봄이면 중국발 황사로 뿌연 하늘을 이고 살아, 회색도시에서 숨쉬기조차 꺼려지며 '봄 우울증'이 올 지경이었는데 1달간 30년 이상 된 9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멈추라는 새 대통령의 행정지시 덕분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얼마전 TV뉴스에서 서울의 공기질이 중국 베이징, 인도 델리,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최악이라는 보도를 접했다. 언제 이렇게 공기질이 최악으로 치달았는지 깜짝 놀라 '미세먼지에 대한 정부정책은 있기나 한지' 궁금하고, 화도 났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던 구보씨는 5월27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서울시민 미세먼지 대토론회' 참가자 모집기사를 봤다. 구보씨는 주저없이 인터넷으로 신청서를 접수했다. 며칠 후 서울시로부터 확인전화가 오고, 218번 테이블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무려 3000여 명이 모인다는데 과연 광장 토론회는 어떤 그림일지, 진행은 어떻게 할지, 의미있는 결론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증을 안고 광화문으로 향한다.

방독면 홍보까지 등장한 '미세먼지'

공기질은 나쁘지 않지만 차량통행이 많은 광화문 한가운데에서는 역시 큰 숨을 들이키고 싶지 않다. 청소년들로 활기찬 광장에는 '서울환경교육한마당'행사가 한창이다. 웨딩남녀에게 방독면을 씌워놓은 마네킹 마저 더 이상 지나친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해 그린피스가 만든 미세먼지 홍보자료에서 방독면을 쓴 가족의 봄소풍 사진과 데이트 중인 청춘남녀가 키스를 위해 방독면을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그린 사진을 접하며 충격에 '미세먼지' 검색어를 눌러댔었다.

머리카락보다 작다는 미세먼지는 공중에 떠다니는 아주 작은 먼지를 말한다. 머리카락 지름보다 작아서 '미세먼지'라고 불린다. 이보다 더 작은 것은 초미세먼지이다.

70㎛인 머리카락 지름보다 작은 미세먼지는 10㎛이하로 국내기준 PM10이하는 미세먼지, PM2.5이하는 초미세먼지로 불린다. PM은 'Particulate Matters'의 약자로 미세먼지라는 뜻이다. '100만분의 1m'라는 ㎛(마이크로미터) 단위를 사용하는 것으로보아 눈으로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미세먼지를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아주 작기 때문에 폐 깊숙이 스며들어 기도를 손상시키고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초미세먼지는 산소교환이 일어나는 폐포낭까지 침투할 만큼 두려운 존재이다. 비염과 천식, 기관지염, 중이염, 후두염에서부터 심근경색, 심혈관 및 뇌혈관질환에 아토피까지 망라한다. 미세먼지를 마시는 것은 담배를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구보씨는 어렵게 담배를 끊은 것이 억울해진다.

태양광 자동차만들기, 플라스틱재활용공장, 업사이클링 부스를 시간에 쫓겨 애써 외면하며 광장 북쪽으로 잰걸음을 놓는다. 미대사관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경찰버스가 공회전 중이다. '트럼프는 사드 철회하라'는 깃발이 펄럭이고 그 아래 1인 시위 중인 것을 보니, 미대사관을 외곽으로 옮겼으면 싶다.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미세먼지 배출량이 서울에서만 37%라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미세먼지 토론회장' 건너편에서 미세먼지를 대량 방출하고 있는 꼴이다. 공회전 경찰버스 옆을 지나치는 차량물결을 보면서 구보씨는 서울시내 교통이 불편해야 차량이 덜 다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5월27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미세먼지 대토론회에서 사회자 김제동씨가 한 어린이의 아이디어를 듣고 있다.
토론회, 미세먼지 원인과 대책

행사장에 들어서니 12명씩 앉게 되어 있는데, 218번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테이블에는 노란 종이모자가 놓여있지만 구보씨는 외면했다. 모자는 개인이 지참해도 될 텐데 싶어 일회용 모자가 마뜩치 않다. 구보씨 테이블에는 초등학생이 3명, 청년에서 장년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녹번동, 성대골, 서초동 등 다양한 곳에서 참여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은 계층을 아우르고 지역을 넘어서는 것 같다.

사회자 김제동씨가 무대에 오르고 토론방식을 설명한다. 1차 토론은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안'을 주제로 참가자 전체가 1분30초씩 이야기한 후 상호토론을 한다. 토론내용이 시시각각 대형화면에 올라온다. 서울지역의 초미세먼지 기여도가 가장 높은 것은 난방, 발전, 교통부분이 76%를 차지했다. 결국 이야기는 미세먼지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이고,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집전기술력의 향상, 차량 2부제와 노후화된 경차 사용금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 도심 생태공원화 등으로 모아진다. 토론 중간에 김제동씨가 인터뷰한 초등학생은 인공위성에 공기정화식물을 채워 서해안에 띄우자는 상상 가득한 제안을 한다. 핸드폰에 그림까지 띄워서 보여준다. 제법이다.

지난해 겨울부터 올봄까지 달구었던 광장의 촛불은 이제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열띤 토론장으로 진화 중이다. 타운홀미팅이라고 불리는 이번 대규모시민토론은 9.11테러 이후 쌍둥이 빌딩을 어떻게 의미있게 재건축할지에 대한 논의로 시작됐다. 하루종일 수천 명의 미국인들의 토론을 통해 합리적이고 가치 있는 건물이 세워졌다고 한다.

2차 토론의 주제는 '왜 우리는 환경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하는가?'였다. 2차 토론주제를 들으며 구보씨는 환경이라는 주제가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에 가장 적합하다는 사회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심의과정이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형식이 광장에서 이뤄지고 있다니 우리사회의 진일보가 느껴진다. 2차 토론과 투표결과 '생명적 가치가 우리가 누리는 편익에 우선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진다.

서울시의 미세먼지 공약

마지막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무대에 올랐다. 노타이와 소매를 걷어 올린 셔츠차림의 요즘 핫하다는 공무원스타일 차림이다. 박 시장은 서울시의 미세먼지 공약을 발표한다.

박 시장은 첫번째 미세먼지 발생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예·경보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서두를 뗀다. 두번째는 미세먼지 경고 발생 시 서울시는 적극적 저감조치로 자동차 2부제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구보씨에게는 극적으로 들렸다. 미세먼지 경고 당일은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250억원의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며 엄살을 부리면서도 박 시장은 "시민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힘줘 말한다. 참가자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 어느새 구보씨는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밖에도 자동차에 비해 40배 높은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건설기계를 친환경으로 돌리고 4대문 안 공해발생 차량 운행 금지, 노후화된 경유차량 단속 등을 약속했다.

우리들 책임과 자세

'남 탓하지 말자' 토론에 참여한 초등학생은 미세먼지를 중국 탓으로 돌리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물론 중국 등 국외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55%로 절반을 차지하지만 국내의 45%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를 야무지게 요구한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미세먼지 외교에 대한 요구도 높았으며, 서울 22% 수도권 11%, 그 외 지역이 12%로 서울과 수도권의 미세먼지 발생 책임이 높았다. 난방이나 차량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우리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다. 구보씨는 올여름 더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며 에어컨을 사주겠다는 동생의 제안에 답을 못했는데 '생명을 위해 나의 편익을 줄이자'며 지켜오던 NO에어컨 원칙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3000여 명을 채웠던 광장은 다시 차량소음으로 채워진다. 그래도 구보씨의 오늘 하루는 맑음이다.
▲ 이태은 교도/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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