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경 교도/순천교당
-산행하며 문득 깨달은 일원의 소식
-우주만물 바라보는 내 마음이 곧 부처
-내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말라


평소 등산을 좋아하는 나는 6년 전, 어느 날에도 집 근처에 있는 산을 올랐다. 양팔은 뒷짐을 진 채 걸음은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걷고 마음은 단전에 두고 영주에 맞춰 단전으로 호흡했다. 그렇게 운동 삼아 걷고 있는데 오후 시간이라 사람도 없고 고요하여 나무들이 주는 신선하고 청량한 공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산을 오를수록 몸은 점점 부드럽고 가벼워지며 마음은 상쾌하고 맑아져 단전에 일심집중이 잘 되었다. 단전이 손에 잡힐 듯 확연해지고 호흡이 들고 나가는 감이 눈앞에 펼쳐지듯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 보니 정상에 다다랐다. 호흡을 멈추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얀 뭉게구름이 눈앞까지 내려와 움직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순간순간 모양이 바뀌며 있다 없다 반복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인 바….' 이 글귀가 떠오르며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짐을 느꼈다. 왜 일원을 언어도단의 입정처라 하고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라 했는지,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라 하고 제불조사 범부중생의 성품이라 하는지 의심이 풀렸다. 아하, 그러구나 예로부터 많은 선지식들이 짝하지 않은 절대적 진리를 찾는 것이 이것이었구나. 이 속에서 모든 것이 나오고 사라지는구나. 내 안의 깊은 희열이 올라와 나도 모르게 사방을 향하여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 후 교전을 보거나 다른 경전을 볼 때 내가 보았던 그날의 그 자리에 대조하며 뜻을 새기면 대체를 알 수 있고, 성리나 의두요목도 차차 알아지게 됐다. 특히 신앙문의 처처불상 사사불공과 수행문의 무시선 무처선이 가슴으로 다가오며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이 뚜렷해졌다. 대종사가 우주만유 삼라만상을 왜 부처라고 하고, 우리가 왜 무시선 무처선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부처가 있고 그 부처에게 불공을 하는데 불공은 어찌해야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이제부터는 두 마음 없이 오직 이 마음으로 영생을 일관하며 적공을 해야겠구나. 그리하면 부처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는 공부를 한다고 나름대로 애를 써보다가 잘 안되고 마음이 자꾸 요란해질 때 포기해야 하나, 생각도 들고 지루하고 괴로운 마음도 들었다. 경전을 읽거나 앞서가는 공부인들을 보면 나는 언제 저렇게 되나 하고 괴로운 마음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진리는 언제나 인연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일상생활이나 종교적 생활이나 집착으로 하는 공부는 참 공부가 아니다. 그 길이 마음에 만족감을 얻지 못할 때는 괴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진리적 생활과 수행을 하면 분별과 집착이 없이 담담함 속에서 찾아오는 인연을 받아들이고 선연으로 돌리게 된다. 그것이 불공이요 수행이다. 수행은 결코 욕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수행이 깊은 산속이나 고요함 속에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시끄럽고 요란한 곳일지라도 그것이 곧 신앙과 수행의 실천도량임을 알 수 있었다.

부처님은 멀리 있지 않다. 너무나 가까이 있다. 처처불상 즉 세상 우주만물이 부처가 아니고 우주 만물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곧 부처인 것을 알았다. 우주만물이 곧 부처라고 하니 눈에 보이나 보이지 않으나 모든 것이 부처라 생각할 수 있으나, 실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모든 경계를 대하는 내 마음이 요란하고 요란하지 않음에 따라 부처를 볼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아무리 부처가 눈앞에 있어도 마음에 부처라 인식하지 못한다면 부처는 만날 수 없다. 내 마음이 부처임을 알았으면 상대가 곧 부처임을 안 것이라, 이것이 처처불상의 도리임을 알았다. 다만 마음이 부처임을 알면 내가 대하는 모든 경계에서 마음의 요란함 어리석음이 사라지고 훈훈한 자비행이 나와야 하겠지만 나는 아직 그러지는 못하다. 일원상의 진리가 분별과 집착이 없는 줄을 알았으나 영생을 살면서 누누이 쌓여온 습관은 아직 그대로 있어서이다. 하기 싫은 마음이 나면 나도 모르게 쌓아온 습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업을 청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알고 묵묵히 공부하고 있다.

아침 좌선도 하지만 언제나 깨어 있는 동안은 주문을 외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일하는 중이나 일하지 않을 때에도 단전에 마음을 모아 주문 수행을 함께하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얻은 가장 중요한 깨침은 '내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 밖에서 구하면 아마도 영원히 부처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도 마음이 온전히 마음대로 되지는 않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이 깊어갈수록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고 혼자 웃을 때가 종종 있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온 것도 감사한 일인데 대종사의 법을 만나 이렇게 행복한 공부로 진급의 길을 갈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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