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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행기 원고초 金剛山 行紀 原稿草
금강산 행기 원고초 金剛山 行紀 原稿草
  • 고대진 교무
  • 승인 2017.07.07
  • 호수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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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행기 원고초의 조성연대는 원기15년(1930), 크기는 15.5cm x 22.8cm, 재질은 종이다. 원소유주는 이공주 선진이었으나 현재 기록물관리실에 보존돼 있다.
'금강산 행기 원고초'는 소태산 대종사가 원기15년 5월1일~9일에 제자 신원요, 이동진화, 이공주와 함께 금강산을 탐승했던 내용이 담긴 이공주 선진의 친필원고다. 200자 원고지 총 39매 분량으로 묶여진 원고 머리말에는 '종사주 말씀하시기를 "금강산은 조선의 명산이요 동양의 명산이며 또는 세계의 명산이다. 오직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금강산은 우리 조선에 깊이 뿌리를 박고 요동하거나 옮겨가려 하지 않는다"고 하시었다'고 쓰여졌다.

첫날 소태산은 경원선 열차로 경성역에서 철원역으로 이동해 제자들과 함께 내금강의 장안사를 탐방했다. 이어 2일~4일은 산행을 하며 영원암·보문암·관음암·장경암, 보덕암·팔담·만회암, 불지암·묘길상을 둘러보고, 6일은 만물상을 탐방했다. 9일간 이틀은 휴식을 취하며 몸을 돌보았다.

이공주 선진의 기행 원고는 당시 교단의 정기간행물이었던 <월말통신> 제32호부터 '세계적 명산 금강산 탐승기'란 제목으로 연재됐다.
기행 이틀째 여정을 이공주 선진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종사님께서는 주의(周依, 두루마기)를 벗으시고 머리에는 파나마 모자를 우수(右手)에는 단장(短杖), 발에는 경쾌한 운동화를 신으신 후 등산을 재촉하심을 따라 원요, 동진화, 공주 등도 머리에는 밀짚모자, 손에는 금강산기행의 지팡이, 발에는 역시 각각 운동화를 신어 가장 경쾌하게 여행장(旅行裝)을 차린 후 명경대(明鏡台)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당시의 행장 모습을 자세히 묘사한 것이다.

금강경 관련 법문은 〈대종경〉 인도품 59장, 신성품 12장, 전망품 5~6장 등에 나타난다. 전망품 5장 '금강이 현세계(金剛現世界)하니 조선이 갱조선(朝鮮更朝鮮)이라'는 글귀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 원불교기록관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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